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며칠후 ABC-TV 에서 한 군인 가족의 애처로운 스토리를 특집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이라크군에 피습된 딸의 생사여부를 몰라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고 온 마을 주민들이 이 여군의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를 매일 올리고 있는 스토리였다. 더구나 프로 마지막에 여군의 사촌언니가 ‘나는 기적을 믿는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나 구슬픈 목소리인지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도 넘쳤다.
여군의 이름은 제시카 린치. 웨스트버지니아 팔레스타인이라는 시골마을 출신의 19세 아가씨. 유치원 선생인데다 군에 입대한 목적이 대학에 갈 학비를 벌기 위해서 였다는 부분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이 프로를 보고난뒤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세상 참 불공평하네. 누구는 대학학비 벌기 위해 군대에 가서 목숨이 위험한 전투까지 마다하고,누구는 부모 잘둔 덕으로 편하게 대학 보내주는데도 말썽들이니… 한인 2세들의 지나친 부모의존 풍토와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미군 수송부대원 14명이 길을 잘못 들어 이라크군의 습격을 받아 5명은 포로가 되고나머지는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보도는 있었다.
그러나 포로가 된 병사중 쇼샤나 존슨이라는 흑인 여군병사는 TV에 얼굴이 비쳐졌으나 습격당한 미군중에 여군이 2명 더있다는 사실은 미군측에서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시카 일병 가족들의 호소를 담은 TV특집을 보고서야 미국민들은 행방불명이 된 여군이 두명 더 있다는 것을 안 셈이다.
트럭운전사인 제시카일병의 아버지는 집안이 넉넉지 못해 딸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입대했다가 불행를 당한 사실이 자신에게는 자책감으로 다가온다면서 평소에 잘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제시카 일병은 전사한 것처럼 보였다. 살았으면 포로가 되었을 것이고 포로가 되었으면 TV에 나타났을 것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습격당했을때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라크군은 미군 부상자 포로가 있다는 것을 발표하지 않았었다.
제시카 일병의 구출작전이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해 졌을때 미국인들이 환호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줄 알았던 제시카 일병이 적진에서 구출되었으니 미국민들이 흥분할만도 하다.
또 한명의 여군 일등병 로리 피스테와는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디언인 로리 일등병의 부모들이 TV에 나와 제시카 일병의 구출을 축하하면서도 자기 딸의 죽음을 슬퍼하고 포로가 된 흑인여군 쇼냐나 일병의 어머니가 “제시카가 구출되어 다행이지만 이 때문에 우리 딸에 무슨 위해가 더 가해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광경은 글자 그대로 삶의 희비쌍곡선을 현장목격하는 기분이다. 제시카 가족들이 떠들썩한 축하행사를 피하고 있는 것도 다른 미군 유가족들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군포로 구출은 미군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더구나 93년 10월 소말리아의 모가디수에서 추락한 헬기 조종사 2명을 구하려다 미군 특공대 18명이 죽고 1명이 포로가 된 기억이 생생한 미군으로서는 이번 제시카 구출이 특수부대의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시킬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월남전에서의 그린베레의 잔인한 이미지, 이란 인질 구출작전에 무참히 실패한 델타포스의 망신등은 미군특공대 이미지에 큰 상처를 남겼었다.
제시카 일병은 용감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전투에서 어떻게 싸웠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대학학비를 벌기 위해 입대했고 훈련을 마치자마자 이라크전선에 배치되어 전투1진에 참가한것 만으로도 용감한 여성이다.
전화위복_할리웃과 출판업계에서는 이 스토리의 저작권을 얻기 위해 앞다투어 제시카에게 꽃을 보내고 있다
이번에는 제시카 일병 환심사기 작전이 펼쳐지고 있으니 인간의 불행과 행복은 종이 한장 뒤집는 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철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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