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김일성이 총맞아 피살됐거나 심각한 사고가 발생, 그의 사망이 확실시된다. 휴전선 이북의 선전마을에는 16일 오후부터 반기가 게양됐으며 휴전선의 북괴군 관측소 2개소에선 이날 ‘김일성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했고...”
1986년 11월 17일 한국의 한 조간신문의 1면 머릿기사 내용의 도입부분이다. ‘김일성 사망설’을 대문짝 만하게 다룬 이 신문 관계자들은 세계적인 특종을 한 것으로 믿고 퍽 상기됐었다. 당시 신문사의 한 간부는 제작을 마무리한 뒤 참석한 저녁 회식에서, ‘큰 베팅’을 했다는 뉴앙스의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한 언론인의 전언이다.
석간신문들도 한발 늦었지만 이 ‘설’을 톱기사로 다루었고 다른 조간신문들은 정상제작으로는 꼬박 하루 뒤에나 신문이 나오게 되므로 비상조치로 호외를 발행해 뿌렸다. 모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었으니 독자들이 ‘사망설’을 ‘사망’으로 받아들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소문을 처음으로 활자화한 조간신문의 의기 양양하던 모습은 이틀만에 ‘겨자 씹은 표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김일성이 18일 오전 10시께 몽고 공산당서기장을 영접하기 위해 평양공항에 나타나면서 소문에서 출발한 ‘역사적 특종’이 ‘세계적 오보’로 판명된 것이다.
일본 공안조사청이 ‘김일성 피살’ 첩보를 입수했고 이 소식이 급속히 퍼진 게 발단이었다. 한국 언론이 벌집 쑤셔놓은 듯 요란스러울 때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관과 미국무성은 신중론을 견지했으나 이들의 견해는 지면 구석에 조그맣게 취급돼 묻혀 버리고 말았다.
사실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김일성 사망설’이 대서특필된 것은 “김일성이 죽었으면...” 하는 정서가 언론과 상당수 국민의 마음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온종일 대어만을 학수고대하던 강태공이 낚시찌의 미동에 온 힘을 들여 낚싯대를 잡아채는 격이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생사여부를 놓고 언론들이 시끌벅적하다. ‘믿을만한 정보’에 근거해 후세인과 수뇌부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을 폭격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미 중앙정보국과 군은 ‘후세인 사망설’에 무게를 주고 싶어하는 눈치다. 보수성향의 워싱턴타임스, 폭스방송을 비롯해 상당수 미국언론은 ‘사망설’을 하나의 가설보다 훨씬 비중 있게 다뤘다. 혹시 “후세인이 죽었으면...” 하는 바램이 은연중에 스며 나온 때문이 아닐까.
반면 영국의 가디언지와 BBC방송 등은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사망설’을 ‘도주설’로 대체했다. 유엔주재 이라크 대사의 ‘후세인 건재설’은 들으나마나 한 반응이다.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설왕설래는 계속될 것이다. 동일한 현상을 자신의 기대치에 따라 요리조리 재단하려는 인간의 심리는 생사가 분명한 전쟁터에서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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