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관광객의 셔터 소리만 요란하지만 동서 베를린 경계에 놓여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는 한 때 한반도의 판문점과 함께 냉전의 찬바람이 가장 세차게 몰아치던 곳이다. 여기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치 시절 게슈타포 본부였던 건물이 있다. 이곳이 지금은 테러 박물관으로 변해 그 당시 참혹상을 알리는 증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미국의 제2차 대전 참전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서부터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기까지 미국은 처칠의 애걸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반전 여론이 너무도 거셌기 때문이었다. 대서양 단독횡단의 영웅 찰스 린드버그와 인종차별주의자 커플린 신부 등은 전국을 돌며 독일과 맞서 싸우는 일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다녔다.
무모한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이에 못지 않게 어리석은 독일의 대미 선전포고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전 유럽은 나치의 군화 발에 짓이겨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물질적 향락에 탐닉한 미국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군국주의에 이골이 난 일본과 독일의 생각이었다.
진주만 기습을 기안한 야마모도 이소로쿠는 1905년 러시아 함대를 쓰시마 해협의 고기밥으로 만든 도고 제독 이후 일본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미국 통이기도 했던 그는 미국을 공격하는 데 가장 반대했다. “전쟁을 하면 6개월 정도는 마음껏 뛰어 보겠지만 그 다음은 모르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진주만 공격 성공 소식을 듣고 기뻐 날뛰는 부하들에게 “미국인들은 정직하고 공평한 사람들이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을 가장 싫어한다. 잠자는 거인을 깨운 게 아닌 지 걱정된다”고 타일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길지 않은 여생을 남겨 두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군국 일본과 나치 독일이 저지른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다. 야마모도에 대한 공부를 조금만 했더라면 미 태평양 함대도 아닌 무고한 수천 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낄낄거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2년 동안 거듭된 미국의 경고와 유엔 결의안을 무시해 온 사담도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한 때는 유럽의 패자였던 히틀러도 항상 강했던 것은 아니다. 1936년 베르사이유 조약을 깨고 라인란트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때 그의 목을 쳤더라면 수천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에 밀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이를 그대로 방치했다.
아랍 파시즘의 원조 사담을 지금 제거하는 것이 장차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길이라는 것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제2차대전 직전의 반전 열기를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이 바그다드의 고문실이 ‘테러박물관’으로 바뀌고 사담의 왕궁이 관광 명소가 되는 날 이라크 반전의 물결도 망각의 늪에 묻힐 것이다.
<베를린에서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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