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 사는 40대 남성 K씨는 일요일이면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다음 1주일간 노모가 복용할 약들을 챙겨서 요일별로 된 약통에 담아놓는 일이다. 심장약, 칼슘정제, 종합 비타민제, 영양제… 등 한 줌이나 되는 약을 하루 두 번씩 복용해야 하는데 80대 노인이 챙기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약이 꼭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영양제, 비타민제를 몇 알씩은 먹어야 안심이 되는 것이 대부분 노인들의 심정이다.
비타민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노인들만이 아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갱년기에 대비하느라 한 알, 두 알 복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움큼씩의 약을 먹게 된다. 50대 초반의 한 주부도 그런 케이스.
“일년 전부터 종합 비타민제를 복용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다른 건 몰라도 비타민 C만은 꼭 복용하라고 해서 비타민 C를 먹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얼마 전 주치의가 비타민 E와 칼슘제 복용을 권하는 겁니다.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르게 되었 어요”
비타민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10년대 초반이었다. 폴란드 태생의 카시미르 풍크라는 과학자가 쌀겨에서 각기병을 낫게 하는 아민이라는 성분을 발견하고부터였다. 풍크는 라틴어의 생명을 의미하는 vita에 amine을 붙여서 비타민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이라는 뜻이다.
존재는 그때 확인되었지만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괴질은 그 전부터 문제였다. 18세기 영국 해군은 선원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 가는데 골치를 앓았다. 잇몸에서 피가 나고 관절이 아프다가 비실비실 죽어 가는 것이었다. 오랜 항해기간 야채나 과일을 먹지 못해서 생긴 비타민 C 결핍증 괴혈병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 고민을 해결한 사람은 제임스 린드라는 군의관이었다. 어느 섬에서 원주민이 병든 병사에게 레몬즙을 짜서 먹이자 병이 낫는 것을 목격한 덕분이었다. 레몬에 신비한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 장기 항해 선박에 레몬을 필수적으로 가져가도록 권장했고 이후 괴질은 사라졌다.
비타민은 몸에 좋은 것, 그래서 충분히 먹어둬야 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의학계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비타민의 효능이 종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좋다는 증거가 없으며, 요즘의 식생활로는 결핍 가능성보다는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들은 비타민제 복용을 자제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통일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복용하라는 의견, 하지 말라는 의견이 공존하니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는 게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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