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새벽이 서서히 다가온다. 동녘하늘이 붉게 물든다. 이 여명 속에 나는 주인공의 눈동자를 찾는다. 강렬했던 두 청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슴에 새겨본다. 전쟁이 가져다 준 처절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 아픔을. 한 여인을 못내 잊지 못하면서.
우리 세대는 전쟁의 와중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친척이 권총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누나의 친구는 빨간 완장을 차고 누나를 데리러 왔다. 전쟁의 출발이다. 전쟁은 흔히 한 사람의 잘못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자라가면서 우연히도 나는 전쟁의 가장자리를 지나갔다. 월남 전쟁 때가 그랬다. 군복무 중이었는데 나는 차출되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 강재구 소령의 동상이 세워졌다. 나는 얼마간을 그 동상을 쳐다보기가 부끄러웠다. 전쟁 소설을 탐닉했다. 독일소설 0815,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등. 전쟁 이야기는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특히 전장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글들이 그랬다. 빨치산 이야기도 그랬다. 전쟁은 마지막 선택이었어야 하는데 역사는 그렇지가 않았다.
실미도의 이야기도 어슴프레 들은 적이 있다. 하마터면 좋은 직장이라고 여의도에 있다는 OSIS 미 첩보대에 취직을 알선 받기도 했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침투하려할 때 나는 실탄이 없는 45구경 권총을 휴대하고 당직을 섰다. 나는 애수의 비비안 리를 생각하고는 했다. 로버트 테일러처럼 정모를 비스듬히 쓰고 다녔다. 아무리 멋있다고 한들 그 당시 군인은 너무 인기가 없었다. 아무도 쳐다 봐 주는 이가 없었다.
‘디어 헌터’와 같은 월남전의 망령이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군복을 다시 입는 운명에 놓였다. 101 공정대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끝이 보이지 않게 중장비를 싣고 달려간다. 걸프전을 치르기 위해 떠나간다. 나는 호텔방에 갇혀 무더기로 투항해오는 이라크 군인들을 화면을 통해 보면서 재빨리 전쟁은 끝나고 헬밋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제대가 되어 돌아왔다. 전쟁을 구경만 한 것이다.
한국에 근무하던 미 병사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그는 한국에서 이라크 전선으로 자원해서 근무 중 로켓 포탄의 공격을 받고 거의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전력을 다해 다리를 움직여 걷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원대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보조 지팡이와 휠체어를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희사하면서.
6.25때 포로로 이북으로 끌려갔던 젊은 청년이 80세의 노병이 되어 이북을 탈출하여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장한 일인가.
전쟁은 신이 내리신 저주이다. 신은 전쟁을 통해서 인간을 통치하심이다. 인간성의회복과 존귀함이 사랑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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