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전투 생사고비 윤응렬 전 공사교장
“전쟁의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저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에서 전투기를 몰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희수(77)의 나이를 넘어 자녀·손자와 다복하게 살 수 있는 것에 대해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한 윤응렬(사진) 예비역 공군소장은 하루하루의 삶이 감사하기만 하다.
윤 장군은 최근 장성한 자녀들이 희수잔치를 해준다고 해서 그 돈으로 전투 장면을 담은 유화를 제작, 미국 관련 박물관에 기증하자고 제안했다. 윤 장군의 유화 기증은 2002년 하와이 태평양 공군사령부, 오하이오 데이튼 공군박물관에 이어 지난해 SD 에어로 스페이스 박물관에도 이어져 한미간 민간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방 미국에 대한 감사함과 한미 우호증진에 도움에 될까해서 시작한 일”이라는 윤 장군은 앞으로도 몇 개의 작품을 더 제작하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으며 한국의 공군 참모총장에게도 재임 시 1점씩 도네이션 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윤 장군이 오늘날 SD 새해 화제인물로 등장할 때까지 셀 수 없는 생사의 고비에서 기적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윤 장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 평양 출생으로 일본비행학교 졸업 후 일본군 자살 특공대 가미가제에 징집 당했으며 일본 패전으로 베트남에서 1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이후 북한 공군에 강제 동원됐으나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1948년 월남, 비행학교 북한 동기생 중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있다. 평생 군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당시 육사를 거쳐 공사 창설대원으로 한국 공군력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대령 진급 후 처음 쌀밥을 먹어봤다는 윤 장군은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 “현재 한국이 위기상황이지만 발전의 좋은 기회도 된다”며 “지도층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그들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윤 장관의 강직함과 아부를 모르는 성품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한 에피소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당시 북한 간첩선을 소탕하는데 제트 전투기를 동원하자는 의미로 해군과 공군 자매결연안이 부상했으며 박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은 연료, 폭탄 재무장, 기상 등의 이유로 불가능함을 알고도 박 대통령의 비위만 맞추려고 했다. 이에 대해 윤 장군은 박 대통령 면전에서 “공군은 제가 전문가입니다”라며 불가함을 진언했다.
‘정직’을 인생의 모토로 삼는 그는 “죽음에 처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신뢰를 받은 인물로 평가받아 이북 출신으로 장군에 올랐으며 주 프랑스 대사관의 공사를 역임했다.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실미도 사건’이나 ‘태극기는 휘날린다’라는 영화에 대해 당시 작전 사령관이었던 윤 장군은 “남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인민군은 추켜세우는 등 내용 일부가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전쟁 난리에 목숨을 걸고 출격하는 아들과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어온 돌아가신 어머니, 현재 아내의 기도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윤 장군은 더 많은 전투장면 유화를 미국 곳곳에 전시, 한미의 관계증진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는 것이 소망이다.
〈문종철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