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감당못해 ‘메디칼 웨딩’급증
“결혼을 원합니다. 아무나 괜찮습니다. 조건은 오직 하나, 의료보험만 있으면 됩니다. 단 가족들이 모두 보장받는 플랜이어야 합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연락주세요.” 시트콤에서나 나올법한 구혼광고다. 하지만 현실이다.
10여 년 전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위장 결혼하는 해프닝을 그렸던 영화 ‘그린카드’ 연상케 하는 `메디칼 웨딩’이 실제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이유는 치솟는 의료보험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 결혼보다 동거가 일반화된 미국에서 동거인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의료보험 회사들의 방침 때문이기도 하다.
태라 크룸. 워싱턴DC에 사는 38세의 이혼녀다. 첫 번째 결혼에서 데일 만큼 데였던 그녀는 재혼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말 남자친구와 `벼락 결혼식’을 치렀다. 이유는 의료보험 때문이었다. 2년 전부터 실직을 반복했던 그녀는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남자친구와 상의 끝에 부부로 합치기로 했다. 새남편은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 가입자였다.
드류 팁슨. 뉴욕에 사는 26세의 법률 프리랜서. 올해 초부터 갑자기 머리와 목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의사들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장기간의 치료가 불가피하다는 진단만 나왔다. 하지만 의료보험이 없었던 그는 3년간 사귀던 엠마 브룩스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의과대학생인 엠마는 물론 보험이 있었지만 동거인에게는 혜택이 없는 플랜이라 불가피했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뉴욕시 법원으로 달려가 10분만에 후다닥 결혼식을 해치웠다.
미국내 가장 큰 질병단체인 당뇨협회와 암 협회에서도 `메디컬 웨딩’이 늘어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당뇨와 암은 장기치료가 불가피한 대표적인 질환이다. 치료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다. 보험소지자와의 결혼은 만성 환자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비상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동성 결혼’도 영향을 미쳤다. 동성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보험회사들의 약관도 변하고 있다. 게이일 경우 동거인도 포함시키던 종전의 약관을 `법적 배우자’로 강화시키는 회사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 바람에 게이 커플이 아닌 사람들도 보험혜택에서 제외되는 선의의 피해자가 돼버렸다.
현재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전체인구의 절반 가까운 44%에 이른다. 반면 보험료는 최근 3년 동안 두자리수 이상 계속 올랐다. 지난해만 평균 13.9% 인상됐다. 4인 가족 기준 보험료는 연간 약 9,100달러에 이른다. 독신자의 경우도 연간 3,400달러나 내야한다. `메디컬 웨딩’은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다.
최근 뉴욕 지하철에는 “결혼은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의료보험 때문이 아닙니다”라는 색다른 광고가 나붙었다. 보험 회사 연합회에서 제공하는 홍보광고다. 하지만 이런 광고 정도로 `메디컬 웨딩’이 감소할 것 같지는 않다. 영주권 결혼처럼 사기행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의료보험 없이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천만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신복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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