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만큼 불우한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예순 셋,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셋방에 운동화 두 켤레가 전부였다. 큰아들 덕진에 작은 아들 형진은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 고 정준영 YMCA 총무 전기 ‘행복한 수박장수’ 출간/일생을 청소년에 헌신한 사랑이 길담아
그만큼 불우한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예순 셋,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셋방에 운동화 두 켤레가 전부였다. 큰아들 덕진에 작은 아들 형진은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오랜 투병 끝에 지난해 67세를 일기로 타계한 정준영 총무의 전기 ‘행복한 수박장수’(제이콤 간)가 나왔다.
일생을 청소년 육성과 한인사회 봉사에 헌신한 한 인간의 고단한 불멸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자 엄격했던, 그러나 불룩하게 나온 배 때문에 수박장수란 별명을 가졌던 한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다정한 회고이다.
작가인 최은숙씨는 “선생의 겉모습에 가려진 원석같은, 감춰진 진짜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의 힘의 원천과 저력을 형상화하는데 무게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전기는 증언한다. 그는 경기도 강화에서 서울신문사 사장을 지낸 청렴한 목회자였던 정등운 목사의 칠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수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가 1968년 9월 유학생의 신분으로 워싱턴에 당도했을 때 그의 가슴속엔 박사학위를 받아 모교의 대학교수가 되는 꿈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가 배운 수학의 방정식처럼 잘 계산되지 않았다.
강복희와 결혼하고 낳은 두 아들의 장애와 직면하면서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기도했다. “주여, 제 길을 보여주십시오.”
정준영은 타인들을 위한 봉사에서 길을 찾았다. 그때부터 집 전화는 24시간 한인들을 위해 열려 있었다. 영어가 서툰 한인들을 위한 통역에, 차가 없는 이들을 위해 대리운전을 해주고….
이민 온 한인 청소년들의 방황과 타락을 지켜보며 새로운 의무감이 그를 부추겼다.
75년 아메리칸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지만 그는 귀국을 포기했다. 워싱턴 청소년센터를 창립한 정준영은 이어 78년 워싱턴 한인 YMCA를 설립하며 스스로‘청소년의 대부’가 됐다.
사람들은 그를‘정 총무’라 불렀다. Y 총무란 직함은 평생 그에게 따라붙은 명예와 헌신의 면류관이었다.
정 총무가 Y를 통해 내건 표어는 선교, 교육, 봉사였다. 세가지 목표에 따라 그는 캠프, 선교여행에 마약, 가정폭력, 직업, 법률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바로 서기를 도왔다.
한국의 얼과 문화를 전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각종 문화공연을 열었고 입양아 가족들을 위한 구정잔치, 동요대회, 교회대항 탁구대회 등 수많은 행사를 치러냈다.
그는 자상한 스승은 아니었다. 무뚝뚝하고 때론 무서우리 만치 엄격한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직접 배추를 씻고 걸레를 잡는 실천자의 수범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정한 말 한마디 잘 건네지 않았지만 제자들의 성격과 환경을 깊이 배려한 독특한 교육법으로 좌절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 희망의 길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철인이었다. 재정난 속에서도 제자들은 정 총무가 쉬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헌사했다. 훈장은 어쩌면 그에겐 하찮은 것이었다. 이미 그는 명예와 물질의 멍에에서 자신을 빼낸 인간이었다.
30여년의 이타행(利他行)은 98년 문득 멈춰 서야했다. 자신을 돌보지 않던 거목은 쓰러지고 말았다. 8만달러의 개인 카드빚만 남기고. 그리고 2003년 11월11일 홀연히 세상을 버렸다. 그의 머리맡에는 그가 좋아했던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란 ‘평화의 기도’가 빛나고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평생을 집 한칸없이 운동화 두 켤레로 마감한 그의 가난한 삶은 어느 누구도 닮고 싶은 삶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랑을 심어주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답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종국 기자>
추모행사서 전기발간기념회
정준영 총무의 1주기 추모 행사가 6일(토) 저녁 6시30분 알렉산드리아 소재 구 코리안 YMCA에서 열린다.
추모행사는 예배와 전기 발간 기념회 순서로 진행된다. 전기는 권당 15달러의 도네이션을 받는다. 판매비용은 정준영 파운데이션 기금으로 적립된다.
문의 703-915-9518(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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