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영산을 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 곳 사람들은 말한다. 어쩌다 구름이 걷힌 설산이 보이면 행운이라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귀한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네팔로 들어가기 앞서 방콕에서 10시간의 기다림도 부족했는지 로열 네팔항공을 탄 후 1시간도 안되어 기체 내 결함으로 회항, 방콕 시내에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다. 네팔 비행기의 이런 실수는 보통이라며 가기 전부터 누누이 들었지만 실제 상황이 되고 보니 정말 불평이나 짜증내는 사람 없이 다들 무표정한 모습이다.
시골간이역 같은 카트만두의 공항은 거의 인도서 온 여행객과 트래킹 온 유럽인들뿐이다. 나는 마중 나온 가이드를 따라 호텔에 짐을 푼 후 간단히 시내 구경을 했다. 그들의 전통 음식인 ‘달밧’을 먹으며 여행 첫날의 긴장을 푼다.
둘째 날 일정은 카트만두 시내관광. 하지만 내 마음은 온통 산을 향해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7대 문화유산이 카트만두에 있다며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에게 나는 트레킹을 위해 체력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무리하지 않았으면… 부탁했다. 네팔을 지식적으로 알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싶은데 쉴새없이 많은 정보를 주려는 가이드의 노력이 마음에 걸린다. 오후에는 전용 차량으로 히말라야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자 너골코트에 갔지만 날씨로 인해 일몰을 보는데 실패하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출을 보기로 했다. 새벽에 보니 황금색으로 뒤덮인 히말라야 설산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신이 난 가이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건너편 예쁜 찻집에 데려가 네팔티인 ‘찌아’를 시켜줬다.
히말라야는 이상한 힘을 가졌다.
바라보는 시간과 장소와 각도에 따라 제각각의 신비한 모습으로 사람을 끄는 힘을 가졌다. 인간의 영혼 깊숙이 들어와 중년의 무뎌진 감성을 일깨운다. 너골코트에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혼자서 오랜만의 평온한 아침을 맞았다. 문명이 스미지 않은 네팔의 신선한 아침이 사람들 가슴속에 오래 남아 희망과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넷째 날은 포카라행 국내선으로 이동. 버스 타고 소풍 가는 기분이다. 몇 발짝 앞에 조종사와 조수가 앉아 있고 안내방송도 생략한 채 붕 떠버린다. 스튜어디어스는 20여명 승객을 위해 스케줄대로 좁은 공간을 고개 숙이고 잘도 다닌다. 창 밖으론 산이 65% 이상인 산악지대에서 계단식 농법으로 각종 농작물을 일구는 삶의 모습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포카라에서 만난 새로운 가이드는 앞으로 4일간 나와 함께 할 트레킹 전문 가이드다. 선하고 깊은 눈을 가진 그는 힌두교도로서 휴머니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포카라 시내 구경을 하면서 그는 오랜만에 여행객을 맞는다고 기뻐하는 한편 정치적 불안으로 여행객이 많이 줄었다고 걱정이다.
다음날 트레킹에 앞서 그와 함께 시내에 들러 짐 점검 후 배낭을 샀다. LA에서 준비해 간 것은 속옷 세 벌, 긴 팔 두 벌, 반 팔 세 벌에 운동화는 한달 전 미리 사 신고 길들였으며 바지는 가볍고 빨리 마르는 UV 차단용으로 등산용품 전문점에서 재킷과 함께 준비했다. 챙이 넓고 끈 달린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 SPF40 자외선차단제, 우비와 우산을 가져갔으며 비상식량으로 그래놀라 바와 초컬릿을 준비했다. 산을 오르며 생길 근육통에 대비해 파스와 진통제, 그리고 모기약도 챙겼다.
삶을 살아오며 나는 각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은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좌절과 실패로 헤매고 있을 때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내일부터 산 전문가인 그의 도움을 받아 히말라야를 볼 것이다. 그리고 내 나름의 중년을 곱씹으며 내가 거쳐야 할 몫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계속>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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