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착 뉴스위크의 페이지를 넘기다 선명한 색채의 사진이 눈에 쏙 들어와 손을 멈추고 자세히 보니 장갑차 위의 미군 병사들과 그들이 던져준 캔디를 줍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수채화 그림이다. 한 미국인 화가가 총탄이 날아다니는 이라크 거리에서 벽 뒤에 숨어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풀고 있으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다가와 둘러싸고 구경을 했고, 그렇게 그린 그림들이 화집으로 발간되었다는 기사였다.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사진이 있는데 한 근육질의 청년을 다양한 포즈로 포착한 몽타주이다. 요즈음 미국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에서 단체로 찍어 만드는 졸업앨범 대신에 전문가들에게 수백달러를 주고 자신의 이미지를 담아 사진집을 만드는 것이 유행한다는 기사이다. 같은 페이지에 나란히 있는 두 기사 사이의 콘트라스트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페이지 밑의 세번째 사진에 눈을 주니 이번에는 한가한 수영장의 다이빙대에서 신나게 점프하고 있는 한 강아지의 모습이다.
미국 내 여러 도시의 시립 수영장에서 가을이 오면 얼른 문을 닫는 대신 견공들을 위해 몇 주간 연장 개장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페이지의 앞뒤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얽힌 기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순간의 미국은 세계 방방곡곡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재해와 태평세월에서 누리는 온갖 소비형태의 모습과 애완동물에의 극진한 배려까지의 모든 삶의 모습들을 모두 한 페이지에 담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최근 읽은 책의 한 에피소드를 겹쳐 떠올렸다.
그 책은 미 육군 대위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인 2세 김영옥 예비역 대령의 전기였는데 흥남 철수 직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도착, 전선에 투입되기 위해 막 부산역에 당도한 그는 1,000명은 족히 될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런닝셔츠 조각이나 겨우 걸친 상태에서 기차 밑을 들락거리며 석탄을 줍거나, 미군이 하나 역전에 도착하면 우르르 몰려 구걸을 하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들 사이를 뚫고 기차에 오르니 객실 한 모퉁이에 미군들의 전투 식량인 C레이션 상자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는데 이중에 내 것도 있으려니 하면서 그중 한 상자를 뜯어 근처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자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객실 문을 열고 그 안에 앉아 있던 장교들에게 각자 자기 몫의 C레이션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겠느냐고 호소하자 수십명의 장교들이 일어나 하나씩 레이션 상자를 뜯어 깡통들을 차곡 차곡 쌓아 놓았다. 김 대위는 다른 장교의 도움을 받아 이 깡통들을 벌떼같이 몰려드는 아이들이 기차에 깔릴까봐 가능한 멀리멀리 던져주었는데, 이미 2차대전의 아수라장에서 온갖 전쟁의 참상을 볼만큼 보았었던 그였지만 그날 그 순간만큼 참담한 심정에 빠졌던 적이 없었으며,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그의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것을 딛고 일어난 한국은 이제 700달러짜리 고교 졸업사진집 이야기가 충분히 그 곳의 이야기 일 수도 있는 사회가 되었고 애완견에 쏟는 배려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한다는 논란이 나오는 나라이기도 하다.
멕시코만의 재해는 오히려 그 지역 발전에 활력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발발시킨 이라크 전쟁은 과연 월남전과는 또 달리 미국인들의 심리에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 정말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한다면 훗날 한국인들은 그에 대해 무엇이라 평가하게 될까?
이것이 다 미국이, 한국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로 한미인들이 “우리는 요란한 사춘기를 거치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너무 멀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유경
campwww.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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