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그리피스팍 정상에 오른 민순자씨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일몰을 바라보고 있다. <신효섭 기자>
신년기획 시리즈 - 한인타운 24시 (4) 오 후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부산했던 점심전쟁이 끝나고 한인타운에 나른한 오후가 찾아 들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털어 버린 직장인들이 다시 일에 몰두할 무렵 LA 한인타운의 학원가에서는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차에서 내려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 실어나르는 학원 밴 ‘부산’
마감앞둔 은행·직장 분주한 시간
타운 인근 등산로엔 ‘일몰행렬’도
오후 2시30분. 순차적으로 끝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수십여 학원의 밴들은 쉴새없이 움직였다. 이 시간대 움직이는 한인 초중생들만 줄잡아 1,000명에 이를 학원가는 추산한다.
오후 3시가 막 지날 무렵, 6가와 마리포사의 청룡태권도/우등생 아카데미 앞에는 밴이 멈춰서고 아이들 대여섯명이 쏟아져 나왔다. ‘꺄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따라 학원가의 시계는 늦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청룡태권도 엄기우 사범은 “다들 맞벌이하니까 퇴근할 때까지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면서 “지금부터 전쟁이 시작”이라고 말했다.
오후의 사무실 풍경은 한편으론 여유와 퇴근 전 끝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섞인 묘한 정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4시 한미은행 윌셔지점. 고객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줄을 섰다. 하루 단위로 업무를 마감해야 하는 직원들에게는 어쩌면 이 시간이 가장 피곤한 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서비스부의 레베카 황씨는 “계좌에 부도가 나지 않도록 매일 확인해 즉시 고객들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퇴근 전까지 긴장을 풀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직장에선 성인들이, 학원에선 아이들이 알찬 오후를 보내고 있을 무렵, 바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발 비켜서고픈 한인들이 일몰시간에 맞춰 LA 한인타운이 내려다보이는 그리피스팍에 오르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 그리피스팍 등산로에 발을 디딘 사람 가운데 5명중 1명은 한인. 정상에 올라 점차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저 밑 세상의 팍팍한 생존경쟁은 잠시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매주 2~3회씩 그리피스팍을 찾는다는 70대 민순자씨는 “해가 떨어져 붉은색으로 채색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경건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하루의 에너지가 다 소진된 듯한 오후 6시가 넘어서면서 도로마다 수많은 차량들이 귀가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마켓이 가장 붐비는 시간도 이 시간대다. 싱글은 싱글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노곤한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맛 나는 저녁식탁을 위한 짧지만 즐거운 고민을 하는 시간이다.
장을 보고 마켓을 나서던 제노배 박씨는 “오늘은 순두부찌개 하려고요. 참 고기랑 남편 위해 소주도 한병 샀어요”라며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오후 3시, 학원에 도착한 학생들이 엄기우 사범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리고 있다.
오후 4시, 한미은행 윌셔지점에는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신효섭 기자>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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