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단지 음식일 뿐인데 너무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격식과 여러 가지 복잡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떨 때는 약간 저항감마저 듭니다.
격식을 차리거나 보다 많은 지식을 지녀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더 멋지게 즐기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순간을 만들 때 촛불을 밝히거나 은은하게 음악을 틀어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격식 때문에 와인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교리나 주의 같은 것들에 묶여서 세상을 경직되게 사는 것과 같은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처음 야구장에 갔을 때 우리는 그 많은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도 즐거웠습니다. 르노아르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그림에 대한 전문지식을 먼저 갖출 필요는 없었습니다. 붉은 해가 만들어 내는 찬란한 저녁 노을이 왜 그런 색을 내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와인에 대해 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즐기지 못하면서 와인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 외국인이 우리의 된장에 대해서 아무리 학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들만큼은 좋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된장을 즐겨왔기 때문입니다.
와인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포도 품종의 맛과 특징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배추김치나 물김치나 깍두기 등의 특징과 맛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김치를 먹을 때 우리는 그 배추가 어디서 재배된 것인지, 흙의 성분은 어떠한 것인지, 날씨는 어떤 곳이었는지 등에 대해서 먼저 알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와인을 어떻게 발효하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무슨 오크통을 썼는지 등은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김치는 먼저 무조건 맛있어야 합니다. 물김치라면 청량감과 배추를 씹을 때의 맑은 느낌이, 열무김치라면 이파리가 주는 기분 좋은 쌉쌀함과 씹을 때의 질감이, 그리고 총각김치라면 아사삭거리는 무의 질감이 질기지 않고 적당해야 하며 단 맛의 힌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와인도 먼저 무조건 맛이 좋아야 합니다. 물건이기 전에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붉은 와인이 된장국이라면 흰 와인은 콩나물국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고 싶습니다. 콩나물국이 맑고 고소하고 시원하고 상쾌한 것이라면 된장국은 구수하고 풍성하며 여러 겹의 맛을 가지고 있으며 깊은 느낌을 주면서 넘기고 나서도 여운을 줍니다. 흰 와인과 붉은 와인의 차이도 바로 그렇습니다.
와인의 품종과 그의 특성 그리고 그 맛의 세계에 눈을 뜰수록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환희를 발견하게 됩니다. 된장국 한 그릇에 우리의 문화와 이야깃거리가 스며있듯이, 와인 한 잔에도 그 나라의 역사와 지리와 사람 사는 모습들이 다양하고 흥미롭게 존재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성과 함께 하는 음식 한 그릇, 음료 한 잔에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gentlewind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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