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턴 소호의 ‘앤스로폴로지’ 매장 내 다른 물건들과 함께 멋지게 진열된 책들.
브롱크스의 ‘마이크스 델리’에서 다양한 치즈, 고기 사이에서 팔리고 있는 책 ‘아서 애비뉴 쿡북’.
뉴욕 소호의 ‘앤스로폴로지’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섬세하게 짜여진 털옷과 매우 여성스러운 꽃무늬 드레스를 사러 오지만 요즘은 간혹 책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검정 스웨터와 오렌지색으로 장식을 한 검정 스커트 옆에 사진작가 애니 레이보비츠의 검은 색이 번쩍이는 커다란 책 ‘한 사진작가의 삶: 1990-2005’가 75달러짜리 가격표를 달고 놓여 있고 ‘빨간 점 하나’란 제목의 그림책은 물방울무늬 캔버스 운동화 옆에 진열돼 있다. ‘노랑의 끈기’라는 제목은 노란색 니트 스웨터 옆에서 완벽한 조화를 뽐내고 있다.
식품점-요리책, 유아용품점-아동도서 등
‘짝짓기 북 세일즈’효과 크다
요즘은 책이 색다른 곳에서 팔리고 있다. 올 8월 매출이 작년 동기에 비해 2.6% 하락하는 등 책 판매가 시원치 않아지면서 출판사들이 푸줏간, 세차장, 부엌용품점, 치즈 가게, 옷가게 등 물건을 파는 곳이면 어디든 가져다 놓고 있기 때문이다. 부엌용품 가게에서 요리책, 하드웨어 가게에서 자가수리법 안내서를 조금씩 가져다 놓고 팔기 시작한 것이 최근 몇달 사이에 많은 주요 출판사들의 주요 소매전략으로 변신하고 있다. 무엇이건 물건을 파는 곳은 책도 팔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지난 달에는 ‘스타벅스’까지 도서판매에 뛰어 들었다.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뻔한 미치 앨봄의 최신작 ‘포 원 모어 데이’에 스타벅스의 브랜드 파워까지 실어주고 있지만 도서 판매방식의 변화는 그보다 덜 알려진 곳에 놓인, 그보다 덜 알려진 작가의 책들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적절한 장소에 딱 들어맞는 제목의 책이 놓였을 경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책의 운명이 단번에 바뀐다.
예를 들어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마이크스 델리’에서는 앤 복스웨인이 쓴 ‘아서 애비뉴 쿡북’이 권당 25달러에 4,500부 이상 팔렸다. 그러나 주요 서점 체인과 독립서점, 온라인 소매점의 도서 매출을 추적하는 닐슨 북스캔에 따르면 다른 곳에서는 전국적으로 고작 8,000부가 팔렸을 뿐이다. 이 책이 하도 잘 나가자 마이크스 델리 주인 데이빗 그레코는 ‘이탈리언 아메리칸 쿡북’ ‘콘 아모레: 부시윅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자란 며느리 이야기’ 같은 책들도 팔기 시작했다. 그레코는 매일 살라미와 모짜렐라를 다루는 델리이므로 기름기가 밸까봐 책을 플래스틱 가방에 넣어 두는 것이 서점과의 차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품-책 관련성으로 시너지 효과 발휘
지난 4년간 특수매장 매출 50%나 성장
최근엔 스타벅스까지 베스트셀러 판매나서
그동안 ‘보더스’ ‘반스 & 노블’ 같은 대형 체인과 ‘아마존’ 같은 온라인 소매점에만 치중해온 주요 출판사들도 새로운 판로를 이용할 전략을 짜고 있다. ‘사이먼 & 슈스터’는 세일즈 담당자들에게 출장 다니면서 보아둔 유망한 상점이나 마켓 등도 판매망에 포함시키라고 촉구하고 있다. ‘타임 워너 북 그룹’은 책 색깔이 다른 물건들과 잘 어울리기를 원하는 상점측 요구에 따라 색깔과 디자인등 책의 장정을 수시로 바꾼다. ‘하퍼콜린스’는 봄철 캐털로그에 내놓을 책은 모두 상점 주인들이 그 시즌을 지배할 색이라고 지정한 녹색과 빨간색으로 디자인할 예정이다. ‘펭귄 그룹’ 세일즈 요원들도 대형서점을 찾기 힘든 농촌지역의 경우 가축경매장을 비롯한 다른 곳을 뚫기 시작했다.
서점 이외의 장소에서 팔리는 책이 몇권이나 되는지는 밝혀내기가 불가능하다. 북스캔의 판매수치는 대체로 전체 도서 판매량의 60~70%에 해당하는데 거기는 서점 이외의 곳에서 팔린 책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은 그것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난 4년간 ‘사이먼 & 슈스터’가 지칭하는 특수시장 매출은 50%가 향상, 독립서점 매출을 다 합한 것보다 많아졌다. 이 회사의 잭 로마노스 사장은 “이제 책을 더 많은 사람들 눈앞에 내놓을 책임은 출판사에게 있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있어왔는데 10년전만 해도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개척하려 하지 않았지요”라고 말한다.
출판사들이 유아용 도서는 유아용품 파는 ‘바이 바이 베이비’, 요리책은 ‘윌리암스-소노마’와 기타 주방용품 매장, 화려한 패션 책은 부틱 옷가게, 디자인 책은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 같은 곳에서 팔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간혹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도 나온다. 뉴저지주 파라머스의 웨스트필드 가든 스테이트 플라자에 있는 ‘배스 & 바디 웍스’는 결혼식, 정원가꾸기, 프로방스 지역 여행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도 팔고 있다.
자리만 잘 잡아주면 ‘어번 아웃피터스’ 같은 전국 체인에 진열된 책은 ‘반스 & 노블’ 같은 큰 책방을 비롯, 웬만한 소매점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려나간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최신호에 따르면 올 가을에 뜻밖에 히트를 친, 낙서화가 밴스키가 쓰고 영국 랜덤 하우스의 센추리 출판사가 낸 ‘월 앤드 피스’가 가장 많이 팔린 곳은 ‘어번 아웃피터스’와 독립 서점이었다.
그러니까 요점은 손님들이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거나 아마존 닷컴을 클릭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샤핑하러 가는, 책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따라가자는 것이라고 출판사는 말한다. 농기구 가게에서 책을 사는 사람이 서점이 없는 농촌지역에서 제일 유망한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도시나 교외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25~40세 연령층을 겨냥한 새 옷가게 ‘마팅 & 오사’는 4개 매장에 이미 수십권의 책을 진열해 놓고 앞으로 더 추가할 계획이다.
이런 곳에서 팔리는 책 중에는 생소한 제목들도 많지만 출판사들은 이 우연히 발견한 시장의 이점을 살려나갈 전망이다. 그곳에서는 서점보다 경쟁도 덜하고, 진열도 잘 되어 있으며, 암암리에 그 매장이 후원하고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소파와 꽃병과 침대 곁에 놓는 소탁자를 보러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에 들어갔는데 소탁자에 책 두 권이 꽂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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