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간과 구분 안돼” 수사 수동적
신고 건수 95% 무죄 판결
피해여성 수천명 매년 신고포기
린다 데이비스(44)는 자신의 15살난 딸을 강간한 28세의 이웃집 남자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3개월이 지나서야 경찰이 사건 조사를 시작했다. 그것도 데이비스가 수십여통의 항의 전화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서야 겨우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강간 용의자로 체포돼 재판정에 선 이 남성은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과거 전과 기록은 있지만 장물 및 마리화나 소지 정도로 중범은 아니므로 “용의자가 어떤 면에서는 좋은 사람일수 있다”고 말한데다가 피해자의 나이를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재판에서 기소 중지 처분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로 비쳐질 이런 일들이 영국에서는 비일비재 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9일 보도했다.
신문은 세계 사법제도의 롤 모델이 되는 영국에서 강간범 처벌 비율이 1970년대 30%에서 요즘은 불과 5.7%로 뚝 떨어졌으며 술을 마셨거나 야한 옷을 입었다가 강간을 당했다면 여성이 오히려 강간을 부추겼다는 손가락질까지 받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영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1만4,000여건의 강간 신고가 접수되며 20명중 19명꼴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설혹 유죄가 인정돼 처벌 받는다고 해도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정도로 간주되니 매년 수천명의 강간 피해 여성들이 창피하다는 이유로 신고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경찰로서는 할 말이 많다. 우선 과도한 업무에다가 피해자들이 사건 발생 즉시 신고를 하지 않아 초동 단계의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술을 마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아 강간인지 화간인지 구별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주장이다.
딸을 둔 30살의 미국인 주부로 런던에서 웹사이트 분석팀 매니저인 다니엘리 웨스트는 2006년 12월 동료들과 크리스마스 술파티를 벌이다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 했지만 경찰이 술을 과하게 마셨다며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담당 여성 경관이 담담한 어조로 범죄로 볼 수 없으며 “술을 마시고 한 성교”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웨스트는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여기가 카불이냐 런던이지”라고 분개하며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강간 사건 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심해지자 맨체스터 경찰국은 이번달 TV 광고까지 내면서 홍보에 나서고 있다. 젊은 남녀가 나이트클럽에서 술도 마시고 춤추며 키스를 나눈다. 남성이 여성을 클럽 밖으로 데리고 나와 건물 담에 여성을 세워놓고 바지를 벗기고 섹스를 시도한다.
이때 여성이 “노, 노, 저리가”라고 밀치지만 결국은 강간을 당한다. 이 남성은 감옥에 간다는 내용인데 실제 이런 케이스가 법정으로 가면 무죄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뭔가 신호를 받았다며 그 결과는 강간이 될 수 없다는 소위 “달갑지 않은 섹스”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영국인들의 3분의 1 정도는 여성이 야한 옷을 입었거나 술에 취했다며 강간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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