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는 지난 10여년간 가까이 지내오는 친구들 그룹이 있다.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하는 일도 각각이지만 때론 한 주일에도 여러 번, 때론 몇 개월 만에 한번 부부동반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며 웃고 떠들다 밤늦게 헤어진다.
워낙 각자 바쁘게 살지만 가끔씩 의기투합하여 다른 일정을 싹 비워버리고는 점심을 같이 하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저녁을 나누면서 각자의 처지와 분야를 중심으로 실컷 수다를 떨기도 한다.
이때는 ‘걸스 데이’라 칭하여 남자들을 끼어주지 않는다.
독일 월드컵 때에는 한국 팀의 경기를 보려고 새벽 3시에 파자마 바람으로 모여 화이팅을 외쳐댔었고, 12월31일 저녁에 모여 만두를 빚고, 거실에 슬리핑백을 주르륵 깔아놓고는 새벽까지 떠들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나절에 주섬주섬 일어나 만두국을 끓여먹고 각자 새해를 시작하러 집으로 향하기도 하였다.
학교 동창들도 아니고 사회에서 이렇게 저렇게 인연이 되어 만난 사이로 처음에는 서로의 강한 개성에 이끌려 재미있어 하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실망과 불평도 터져 나왔었지만, 10여년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이제는 서로의 든든한 울타리로 확연히 자리가 잡혔다. 그리고 각자의 친구들을 서로 소개 받아 점점 그 울타리가 넓어져 가고 있다.
서로의 유사성이 우리를 편하게 묶어주는 힘이라면, 위급한 일이 생기면 총알 같은 순발력으로 순식간에 일처리를 하는 친구가 선뜻 나서고, 우울한 일이 있으면 항상 명랑하여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친구가 선봉이 되어 분위기를 전환시켜 주는 등 각자의 독특한 개성은 그룹에 묘미를 가해 주는 활력소임을 이 친구들을 통해 확인한다.
얼마 전 북경 출장 중 호텔 건너편에 식당 간판이 즐비한 골목을 발견하고 길을 건너려는데 하필 그 길은 자그마치 10차선 도로였건만 아무리 살펴봐도 건널목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만 눈에 뜨였다. 에라 모르겠다, 용기를 내어 달려오는 자동차 물결을 뚫고 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뛰다가 중간쯤에서 흘끔 주변을 살피니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아주 유유자적하게 너희가 나를 치고 가겠냐는 듯 느긋이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중국인들이 서울에 가서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도 뛰어다니는 한국인들 틈에 끼이면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같은 맥락에서 ‘빨리빨리’의 한국인들이 아무리 중국시장을 탐낸다 한들 하루아침에 ‘만만디’의 중국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니 그들과 비즈니스를 하려면 무지 답답할 것이란 생각도 했다.
국가와 민족 사이의 친교도 개인과 개인 사이의 친분 쌓기와 같은 원리에서 이루어진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관계의 발전도 힘이 든다. ‘글로벌리제이션’을 경제적으로만 해석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각지의 인간사회는 궁극적으로 함께 동고동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둥그런 지구 위에서 누굴 쫓아낼 수도 없고 함께 살아야 하니 말이다. 국가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다가가는 필연의 과정이 바로 ‘글로벌리제이션’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에 가속도를 붙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경제이겠지만.
그 안에서 중국인도 할 일이 있고, 한국인도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근본적 유사성을 토대로 공감대를 늘려가면서 각 민족의 특성을 활력소로 삼아 하나의 공동체로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금년 초 새로 취임한 한국의 대통령이나 연말에 새로 뽑힐 미국의 대통령이나 모두 이러한 근본적 인식을 외교정책의 바탕에 깔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한 외교를 펼치게 되리라 본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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