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지막일수도 있는 슬픈 배웅도 있을 것이고 다시 만날 기약을 하는 기쁜 기다림의 것 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배웅을 받는 입장과 배웅을 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듯이 감정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배웅을 받기 보다는 배웅을 하는 입장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쪽에서 마중을 하면 저쪽에서는 배웅을 하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마중 무게라는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건물 아래층 현관에 까지 내려와서 마중하기도 하고, 또는 3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사무실에서 앉은 채로 배웅하기도 할 것 이다. 그때 소요되는 시간길이는 장소 못지 않게 큰 무게를 차지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에 놀러 온 친구나 가족들과 배웅할 때 차문을 닫아주며 우리들의 모습이 서로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배웅은 참 기분이 좋다. 두고두고 기분이 좋다. 물론 나오지 말라고 하며 떠나는 이도 있지만 좋은 배려는 아닌 것이다. 느껴야 할, 나눠야 할 부분을 왜 놓쳐 버린단 말인가. 그럼 집안에서 안녕 하는 것을 그 사람은 좋아 한단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죽도록 아파서 누워 있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항상 ‘얘야, 아이들이랑 힘든데 그냥 있어라’ 그렇게 말씀하셔도 우리 가족 모두 강아지까지 우루루 함께 따라나가면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몇 일 있으면 나는 마중을 하러 간다. 한 시간쯤 일찍 미리 나가 마중의 기쁨을 홀로 실실 웃으며 맘껏 느껴보리라. 마중을 하고 나면 곧 배웅도 따라 올 것이고, 배웅을 했다면 곧 마중도 하리라. 아, 그리고 적응 기간이 3개월인 ‘여성의 창’, 지금 꼭 끌어안고 배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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