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자전거 뒤에 붙어서 2인 1조가 되어 페달을 밟고 산길을 다녀온 딸 아이가 연신 아프다고 칭얼거린다. 아픈 게 무서워서 화장실도 안가고 하루 밤을 그냥 버티는 아이를 보면서 자전거를 살이 해어지도록 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내 속으로 낳은 아이가 내가 알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병원에 가서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아프냐고 되묻는다. 둔하게 저리듯 아프냐, 타는 듯하냐,푹푹 쑤시냐, 아니면 칼로 베이는 듯하냐 등등. 이 고통, 즉 통증만으로도 미국인의 반이 병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여기다 심리적인 고통까지 치면 고통의 문제를 비켜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봐야 한다.
시험과 고난의 연속인 삶의 조건 속에서 우리는 일이 닥칠 때마다 왜 라는 질문만 던진다. 원인을 분석하고 살 길을 찾느라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은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쑤시고 타는 듯하고 예리한 칼에 베인 듯한 나의 고통이 이전의 그리고 지금 누군가의 아픔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의 아픈 경험은 내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미 거쳐간 것일 수 있다.
혼자 겪는 것 같은 고통이 우리를 오히려 다른 사람과 이어주기도 한다.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만으로도 낯선 사람들 간에 말문이 터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픔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공감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순탄하게 살아온 것이 자랑이 아닌 이유는 그 만큼 경험의 폭이나 공감의 여지가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어려운 시절, 갖가지 고난이 우리의 공감능력을 한단계 올려놓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레 겁을 먹고 자전거 타기를 포기해버린 나는 자전거에 대한 상식이 없어 아이가 다칠 수도 있다는 대비를 하지 못했다. 또한 다치고 나서도 얼만큼 아픈 것인지 엄살은 아닌지 아이의 눈물에 공감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딸아이는 오늘의 아픔으로 내일 같은 아픔을 겪을 친구들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