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 25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시인이 된T.S.엘리어트는 그의 시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라고 읊었다.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한 사월은 70년대 초, 대학 신입생 시절, 통기타 가수인 윤형주가 부른 ‘라일락 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라는 노래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대학에는 라일락 나무가 많았고 그 짙은 향기가 너무 좋아,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연 보라색 라일락 꽃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 해 사월에는 봄비가 많이 내렸고, 유난히도 학기초에 휴강시간이 많아서, 어렵게 재수까지 하고 들어간 대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운 좋게도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어 휴강일 때는 대학로의 학림 다방에서 클래식 음악 감상을 하며. 황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 시이지만 그 친구는 나름대로 내가 이해하고 자기의 의견에 동조할 때까지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20년 후, 일가 친척 하나 없는 미국땅에, 남편도 없이 용감하게 세 아이들을 데리고 황무지와도 같은 싼타 크루즈에 씨를 뿌렸다. 작은 씨앗이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니 척박한 땅에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고향 경상도 논둑길에 널려 있던 까마중 나무나 미나리 아재비 같은 잡초들이 여기에도 다 있는데, 라일락나무 만은 이 동네에서 찾을 수가 없어 아쉽다. 몇 년 전 펜실바니아에서 살 때에는 라일락 나무를 얻어다가 뒷뜰에 심어두었었는데.
이제 황혼이 깃든 황무지에 국화, 장미, 코스모스와 제라늄들이 만발하게 거름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사랑으로 무지를 개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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