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격한 테마도 해학적으로 풍자
▶ 5월24일까지
LI 그레잇 넥 박영숙통신원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몇 안 되는 컬럼비아인중의 한명인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떼로(Fernando Botero, 1932~ )의 전시가 Nassau County Museum of Art에서 ‘예술은 변형이다.(Art is Derformation)’라는 주제로 3월 13일부터 5월 24일까지 David Benrimon Fine Art LLC 의 후원으로 열린다.
일상의 평범한 장소인 침실이나 가족행사, 음악의 황홀한 흥분속에 있는 사람들, 거리의 삶 등, 시종일관 보테로의 풍만함과 거대함이라는 ‘Botero-esque’가 보여지는 주제를 잘 설명해주는 페인팅이나 드로잉, 기념비적인 조각품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1932년 컬럼비아의 안티오키아 디파트먼트의 수도인 메델린에서 태어난 보떼로는 어린 나이에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의 예술적인 성숙함은 그가 17살 때 메델린의 신문인 엘 꼴롬비
아노에 기고한 삽화가 그려진 기사에 명백히 나타나는데, ‘피카소와 예술의 불일치’라는 제목으로 현대 예술에 대한 그의 선구자적인 사고가 벌써 보여지는 것이었다.
보떼로는 그의 나이 19세에 보고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20세에 보고타의 National Salon에서 2등상을 받는다. 상금과 전시회를 통해 번 돈으로 대 화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자 했던 오랜 숙원을 이룬다. 마드리드에서는 산 페르난도 학원에서 공부하며 매일 쁘라도 박물관을 찾았다. 플로렌스에서는 산 마르꼬스 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지오또, 빠올로 우셀로 등의 작품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멕시코에 잠시 머무르며 그는 ‘Still Life with Mandolin’(1956)이라는 부풀린 형태가 뚜렷이 드러난 첫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2년 뒤 그는 보고타의 National Salon에서 ‘Bridal Chamber’라는 작품으로 1등상을 받았는데. 만투아에 있는 두칼 궁전을 위해 지은 Mantega의 1474 프레스코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Homage to Mantega’라는 작품이다. 1960년 보떼로는 뉴욕으로 가고 이듬해에 뉴욕의 현대 미술 박물관에 그의 그림인 ‘Mona Lisa Age Twelve’가 소장된다. 그 뒤 몇 년간 보떼로는 점차 붓과 섬유의 흔적을 없애고 대신 부드러운 부풀린 형태를 선택해서 심미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형태를 변형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어린 시절의 컬럼비아에 대해 지속적으로 느끼는 매력은 중산층 가족들, 주지사들, 고위 성직자들, 군인들, 수녀들, 창녀들, 그리고 열대과 일이 있는 부유하고 조용한 삶을 그린 작은 마을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에 반영되어 있다.
1970년대 말 보떼로의 명성은 세계적이 되었다. 1973년 보떼로는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조각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삼차원에서의 그의 작품활동은 볼륨과 크기를 표현하는 데만 전념해온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오늘날 보떼로는 자신의 시대를 뉴욕, 파리, 투스카니에 있을 때로 나눈다. 대체로 가난하고 척박한 곳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춘 다른 라틴 아티스트들과 달리 그는 그만의 해학적인 화풍으로 그들의 세계를 밝게 그렸다고 할 수 있겠다.모든 위대한 창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떼로는 자신만의 작품의 색깔을 위해 역사에 의지했다. 지오또, 빠올로 우셀로와 같은 뛰어난 대가들이 남긴 작품을 받아들임으로써, 메델린, 플로렌스, 뉴욕, 파리, 마드리드 등지에 사는 동안 사람들이 그에게 제공했던 최고의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중세, 이탈리아 문예부흥 초기,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시대의 예술에서부터 20세기 현대 경향에 이르는 모든 예술사에서 주제를 끌어냄으로써,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로 변형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회화에 나타나는 보떼로 특유의 풍만하고 둥근 이미지는 매우 풍자적인 것인데, 군인들과 부르조아층의 비도덕과 파렴치한 매너, 권력 등을 비난하고 있으나 테마의 과격함과는 달리 표현은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다. 또한 기존의 날씬함만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던 풍토에서 훗날 그의 이런 화풍은 페미니즘 그룹을 낳을 정도로 가치로서도 인정받게 되었다.처음 그의 유명세나 업적을 전혀 모른 채, 생각없이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 외모지상주의에 반박하고픈 의지를 담아 이런 식으로 부풀려서 그렸나? 하고 혼자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림이든, 문학작품이든, 혹은 건축물이 됐건, 역사속에서 하나의 획이 그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식의 꾸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시실을 그의 그림을 통해 배우게 된다. 지금 그의 그림과 조각은 전 세계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Mona Lisa’
’Danc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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