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손전등』(Flashlight)의 작가가 ‘수잔 최’인 것을 보았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반가움과 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녀는 한국계 아버지와 유대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9년 미국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에서 태어났다.
이 작품은 가족의 상실과 기억의 파편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현대 소설로 평가받는다. 1978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딸 루이사(Louisa)와 그녀의 아버지 ‘강 석’이 일본의 해변에서 저녁 산책을 하던 중 아버지가 실종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수영을 할 줄 몰랐고, 딸을 위해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루이사는 거의 익사 직전 상태로 발견되지만, 아버지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기보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아버지 석, 미국인 어머니 앤(Anne), 그리고 딸 루이사의 삶과 관계, 각자가 품고 있는 트라우마와 갈등, 기억의 불확실성이 과거와 현재, 개인사와 역사적 배경을 넘나들며 교차된다.
그들의 삶에는 늘 역사가 흐른다. 아니, 그들은 역사 속에서 휩쓸리며 살아간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석은 한국의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삶의 방향이 바뀐다. 어린 시절 석과 그의 형제자매는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가족이 북한으로 이주한 뒤, 석은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대학교수가 되고 백인 여성과 결혼해 딸 루이사를 얻는다. 그에게 딸은 전부이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미국에서,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의 삶은 점점 위축되고 고립되어 간다.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한 가족의 존재는 그에게 늘 두려움으로 남아 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교수로 일본에 파견되어 머무는 동안, 그는 북한으로 납치되는 비극을 맞는다. 석은 깊은 좌절과 분노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딸을 향한 그리움 하나로 삶을 버텨 나간다. 걷잡을 수 없이 뒤틀려 가는 그의 인생은 허망하게 저물어 간다.
루이사의 어머니 앤은 동양인 남성과 결혼한 이후, 일상 속에서 미묘하게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와 차별의 시선을 감지하며 살아간다. 남편이 실종된 뒤, 그녀는 오랜 시간 정체성과 상실, 문화적 고립 속에서 살아간다. 루이사는 어린 나이에 정신과 상담을 받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느끼게 되는 ‘다름’은 그녀 안에 또 다른 갈등으로 남는다. 앤과 루이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지만, 그 차이는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한다. 등장인물 각각의 시선과 감정을 섬세하게 교차시키는 이 소설은 구조가 치밀하면서도 깊은 정서를 품고 있다.
이 작품은 줄거리보다 인물의 내면과 행동에 초점을 둔다. 독자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지만 정작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자식은 부모의 침묵을 오해하며 성장한다.
이민자의 가족이라는 조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비극이 개인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비극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이 끝내 드러내지 못한 진실로 인해 세계사의 균열이 개인의 사생활 속으로 침투하는 방식을 그려낸다.
제목은 왜 ‘손전등’일까. 이 손전등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기억과 진실을 비추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루이사의 아버지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딸을 보호하기 위해 꼭 손전등을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손전등은 모든 것을 밝혀주지 않는다. 그 빛은 언제나 부분적이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영역은 남아 있다. 작가는 모든 진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회상하는 과거 기억은 서로 어긋나 있고, 그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비로소 전체의 진실에 가까워지지만, 소설 속 인물들뿐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 각자 역시 끝내 그것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가고,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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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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