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샀다.
파는 쪽에서 물건을 팔고 이득을 봤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는 쪽에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에 대한 이해의 여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깊이가 다르다. 사는 쪽에서 감사하다 할 이유가 산더미 같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그래야 하는 지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쪽도 더 많은 게 세상이다.
앞뒤 잴 것도 따질 것도 없이 그리스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한번 어깃장이 나기 시작하면 겉 잡을 수 없는 게 사람의 감정이자 외교의 단절이다.
철강왕으로 유명한 카네기가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의 편에서 분노의 대상과 구체적인 분노의 실체를 파악해 들어가다 보면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게 대부분이고, 분노의 원인을 찾아가는 동안에 분노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면서 절대 침착을 강조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 분노했을 때에 얼마나 빨리 ‘냉정’으로 되돌아오는가 하는 ‘시간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구분한다고까지 역설하는 대목에서는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서로가 만족스런 결과를 갖길 원하고, 발전되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지향코자했을 때 우리는 흔히 “죠해리 창(심리학자 Joseph Luft와 Harry Ingham)”을 대입해 보라는 권유를 받곤 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담판의 현장에서도 협상의 여지는 두어야하고,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고 했던 단재선생처럼 세상에 믿을 놈은 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공동생활과 인류번영을 위해서는 다면식 상호 인식의 폭은 넓을수록 좋다.
멀리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데서 유래해서 자기성찰과 자가진단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 그 변화를 꾀해 봄직하다.
답답하게만 보이고, 미련한 몽니쟁이 같아보여도 언제 그랬었냐는 듯 친해질 수 있는 게 인간관계고, 외교이다.
이런 작은 개인 간의 이해 조정이나 신뢰관계의 고려와 연습이 조직 간에, 또는 국가 간에도 적용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상대방 탓으로 뭐든지 몰아부치는 것은 단기적 전술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전략이나 정책으로는 부적절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죠해리의 `창의 이론’에 의하면 자신을 살펴보는 네 가지 섹션이 있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고 있는 나(open), 나는 알고 있으나 상대방은 모르고 있는 나(close), 나는 모르고 있으나 상대방은 아는 나(hidden), 나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고 있는 나(blind) 이상의 네 가지 섹션 중에서 어떤 상황, 어떤 상대냐에 따라 각기 섹션의 크기를 달리해 가면서 연애도 하고, 전쟁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상대방의 변수 네 가지까지 가미되었을 때에는 여간 복잡해 질 수가 있다. 베니스의 상인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협상가 옆에는 `내 것도 네 것, 네 것도 네 것’하는 식의 신앙적 신뢰에 바탕을 두고 ‘배려’를 몸에 붙이고 다니는 속 깊은 사람도 옆에 두는 것도 협상가의 필수요건이다.
왜 저렇지, 왜 저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가의 고려 없이는, 절대로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다.
죠해리의 창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 더 한층 요구되는 게 요즈음의 남북관계이자 이명박 정부이다.
강창구
워싱턴 사사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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