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가을날 백제에서 제일 길고 크다 하여 이름 지어진 백마강 16km를 찾아 유람선을 타 보았다. 이름대로 호화로운 선박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렇게 초라한 배도 아니었다. 승선하면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백제의 옛 고도 부여, 그 중에서도 백마강에 띄워진 유람선이라면 백제의 이름만큼이나 호화스러워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며 물결을 스치고 지나가는 배 안에서 어느 지점에 오니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낙화암’이었다. 삼천 궁녀가 치마를 둘러쓰고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소정방과 김유신의 연합 군대가 공격을 하니 의자왕은 계룡산으로 옹진을 하고 궁녀들은 최후까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의자왕 한 남자를 바라보며 그렇게 많은 여인들이 일생을 그저 소모품으로 지내야 했다니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여성은 남성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야’라고 절규했던 페미니스트 김연주씨를 생각게 하는 시간이었다. 여성은 어머니가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적 기독교 사회에 반기를 들고 ‘여성은 또한 남성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목사의 딸로 태어난, 행동하는 신세대의 대표적 여성의 한 사람인 그의 외침이 떠오르는 장소였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우리 선조들은 여성을 그저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한 편견에서의 해방을 가장 강조한 것은 17세기 영국의 ‘경험론’의 창시자 ‘베이컨’이다. 우리는 그의 이론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편견은 곧 우상이라는 그의 주장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종교적, 성적 편견, 이런 것들이 가져다 준 편견적 사회가 결과물로 보여주는 곳이 ‘낙화암’이다.
의자왕의 편견의 극치를, 그보다도 우리 선조들의 여성 편견의 정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웅장한 바위돌이 칼로 깎아 세운 듯 서 있어 보는 마음에 슬픔을 느끼게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진리의 하나는 인간은 허욕과 망상의 노예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허욕과 망상은 정견의 자리에 편견을 들여 놓는다. 그러면 이 편견은 오판을 잉태하고 오판은 그릇된 행동을, 그릇된 행동은 그릇된 결과를, 그릇된 결과의 잉태는 불행을 출산한다.
한 두 사람의 아집이 이렇게도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고 몇 사람의 허욕이 수많은 후세들의 가슴 속에 안개로 남아 있어 근대 여성사에 페미니스트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바꾸어 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줄기에 오늘은 더 값지게 살아가야만 되겠구나 하고 다짐해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낙화암 절벽 군데군데 자라는 ‘고란초’는 유난히도 외로워 보였다. 절벽 바위 틈새 사이로 파란 줄기를 내밀며 자란 풀. 낙화암에서만 볼 수 있다는 식물. 많은 사람들은 삼천 궁녀의 혼이 저 식물이 되어 저 절벽에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절벽 위의 고란사의 저녁은 풍경 소리와 함께 온다. 고요함 속에 들리는 풍경 소리는 어두움을 재촉하는 듯 하며,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 우는 소리는 여인들의 원망 소리인지, 미련의 소리인지 가슴 속을 파고드니 그 쓰림을 말로는 형언할 수가 없었다. 아집과 허욕의 조상을 원망하는 소리일까? 여성의 권리 신장을 외치던 선배들에 대한 찬양일까? 소쩍새 우는 백마강에는 어두움이 짙어가고 풍경소리가 요란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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