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도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 장면
중부 뉴저지 각 타운에서 메모리얼 데이를 기념하는 각종 퍼레이드와 행사가 27일 성대히 열렸다.
한인이 다수 거주하는 에디슨에서는 전통적으로 26일 정오부터 오후 두시까지 제피 스티븐스 고등학교와 에디슨 고등학교 밴드의 반주에 맞춰 시청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였고 이때 타운 거주 국가 유공자들을 초청했다. 그리고 인근 메타친에서는 27일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를 열었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의 역사를 살펴보자. 1971년부터 국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을 기념 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 사이에서 이 메모리얼 데이의 유래와 변천 과정에 대해 사실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노예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승전을 한 북군 (Union Army) 전사자들을 기리는 데코레이션 데이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최초의 공식 문건이 패전한 남부 도시 찰스턴에서 전쟁과는 무관하게 희생된 2,800여 명의 어린아이들을 애도하는 신문 기사를 그 효시로 삼는 이들도 있다. 1865년 5월 1일자 기사였는데 이때 어린 영령들을 기린다는 의미의 데코레이션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해 1866년 5월 5일에 뉴욕 주 워털루 시에서 당시 북군의 장군이자 이 도시 출신이 머레이 장군의 승전을 기리는 행사를 시작했고 머레이 장군의 승전보를 널리 후세에 알린다는 의미의 데코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쨌든 역사학계도 모두 인정하듯 이 데코레이션이라는 단어는 그때까지도 앙금이 가시지 않은 남과 북이 서로 제각기 다른 의미였고 데코레이션 데이 기념행사는 각 지역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지적인 행사였다.
그런데 여기서 왜 기념일 행사가 5월이냐는 의문이 다가온다. 이는 남군이 공식적으로 항복을 해서 전쟁이 끝난 1865년 4월 9일에 가까운 날을 택했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인데 사실 크게 만족스런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한번 5월로 기념일이 정해진 이후 날자는 달랐지만 전통이 굳어져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1920년대까지도 데코레이션 데이 기념행사는 국가 차원의 행사는 아니었다. 미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1차 세계 대전은 사실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는데 이 전쟁에 파병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자 전 미국적 차원에서 기념행사를 시작하였고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정신으로 1967년 이름도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로 바꿨다.
그리고 4년 후 1971년도에 이르러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의 발의를 국회에서 받아들여 국정 공휴일로 정하고 미국 역사 상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유공자들을 기리고 현재 군에 복무하는 이들을 우대하는 의미의 메모리얼 데이가 정신이 선포되어 현재에 이르는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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