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곧 학도병으로 종군 중 1951년 1월 14일 육군종합학교(전시사관학교)제14기를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동월 16일부로 대구 육군본부에서 제7사단으로 보직명령을 받아 강원도 영월에 주둔한 사단사령부에서 다시 제5연대 3대대 1중대 3소대장으로 명을 받았다.
나는 중대 선임장교의 안내로 소대원 앞에 신임 소대장임을 소개 받고 곧 소대 파악에 임했다. 전 소대원 32명, 2등 상사인 선임하사와 2등 중사 향도 1명, 그리고 2명의 연락병과 9명을 1개분대로 한 3개 분대였으며, 소대원 거의가 전투경험이 없고, 교육수준이 낮은 신병들이었다. 거기다가 소대장인 나도 지휘경험이 없는 신참 소위였다.
공교하게도 연락병 2명은 같은 고등학교 동기생으로 자원입대한 사이로, 1등병 계급장을 철모에 흰 반창고로 붙이고, 장난 끼가 득실거리고 명랑한 성격을 가진, 정말 전쟁의 두려움을 전혀모르는 여염집 막내둥이 같은 발랄하고 건장한 병사들이었다. 휴식시간엔 의례히 이들이 고된 소대원들을 익살로 웃기고 오락을 주동하는 우리 소대의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나와는 겨우 2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이들을 나는 전우로서, 또 동생 같이 때로는 친구 같이 애틋하게 사랑했다.
내가 소대장으로 보직 받고 얼마 안 된 1951년 1월 말경, 우리 7사단 전면 영월(寧越) 동남쪽 약18km지점의 산간벽지에 록전리(碌田里)라는 뒷산에 인민군이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아군의 추격을 지연시키고자 사력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이 산은 워낙 악산인데다 무서운 한파에 약 70~80cm의 폭설까지 내려 눈 속을 헤치며 적진을 향해 공격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더욱이 칼날 같은 바위로 된 유일한 진격로에 적의 저격수가 조준사격을 지향함으로써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휘하는 3소대는 중대 좌측, 2소대와 연대하여 공격했다.
이 전투는 내가 소대장으로 처음 감행한 전투였다. 사실 처음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30여명의 생명이 내게 달려 있고, 기필코 인민군을 섬멸하고 아군 진격에 유리한 전황을 견지해야 할 절체절명의 전투였다. 군인은 전쟁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공격 중 2소대장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소대의 유일한 통신수단인 scr536무전기로 중대장에게 2소대장의 사고를 직접 보고했다. 중대장은 즉시 2소대도 내 지휘로 공격하라고 명했다. 나는 지체 없이 연락병 박기철 일병에게 2소대 선임하사에게 전달사항을 일러, 속히 전달하라고 명령했다.
적의 완강한 저지에 사상자가 속출하고 진격이 점차 더 어려웠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부하들을 독전하는데 “소대장님!” 단절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는 쏜살같이 “박일병!”하고 반사적으로 단숨에 10여 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진 박 일병을 끌어안았다. 벌써 하얀 눈은 붉은 선혈로 물들고 가슴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피는 박 일병의 군복 속으로 스며들며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박 일병! 박 일병!”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피로 범벅이 된 박기철 일병을 흔들어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박기철 일병은 마지막 한 마디 “소대장님!”하고 내 품에서 죽어갔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며 “그래 너의 원수를 꼭 갚아주마!” 속으로 외치며 핏발선 눈으로 적진을 응시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전세가 불리하여 박 일병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우리 부대는 치욕의 후퇴를 하고 말았다.
어언 6.25발발 63주년이 되고, 휴전 60주년이 되는 지금도 6월이 되면 “소대장님!!”하는 박 일병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슬픈 전사를 떠오르게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