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범죄 ‘연좌죄’ 적용 가혹한 퇴거규정
▶ 아들이 마약현장서 체포, 공공주택관리 정책 따라 전 가족에 “방 빼라” 명령, 이제 날씨도 추워지는데 사춘기 맞는 10대 딸과 떠돌이로 살아야 한다니…
완다 콜만이 뉴욕의 공공주택단지 내 아파트에서 퇴거통지서와 관련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뉴욕시 공공주택관리국으로부터 퇴거확정 통고를 받은 완다 콜만(48)은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에겐 달리 갈 곳이 없다. 아파트를 나서는 순간 완다는 영락없는 홈리스가 되고 만다. 게다가 그녀에겐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로 들어선 10대 딸이 혹처럼 달려 있다. 홈리스를 위한 임시 셸터를 찾아보아야 하는데, 고장 난 자동인형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절망감에 절여진 마음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짐 가방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거실 한쪽 구석에 처박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집 달리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언제 밥을 먹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식욕도 없다.
완다가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들의 체포기록 탓이다.
그녀는 연방 정부의 렌트 보조를 받아 시정부가 관리하는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25년을 지냈다. 이곳의 세입자들은 시 정부가 결정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정책에 매여 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범죄행위로 체포되거나 기소되면 일가족 전부가 퇴출을 당하게 된다. 다른 가족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행위가 저질러졌다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의 결격사유가 공공주택단지 밖에서 발생했다 해도 일가족 강제퇴거 규정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물론 완다는 여느 퇴출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아들이 한 일에 왜 우리 가족 전체가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다.
그러나 “아들의 범법행위가 도대체 내 아파트와 무슨 상관이냐”는 그녀의 항변은 “규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관리사무소 직원의 지적 앞에 힘을 잃는다.
기본적으로 연방 정부 당국은 공공주택단지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이 제도와 관련해 숱한 불평과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자 당국은 관련 법규를 다소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전과기록을 지닌 공공 주택단지 거주자들의 재범을 방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들이 제시한 관련법규 완화의 이론적 근거였다.
뉴욕시 공공주택국도 지난해부터 출소자들이 저소득층 아파트에 입주한 가족들과 재결합하는 것을 시범적으로 허용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150명의 출소자들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뉴욕시 공공주택국이 마련한 법규에 따르면 저소득 아파트 단지에 생활하는 가구의 소속원이 범죄행위로 체포되거나 기소됐다 해도 해당자의 가족이 그를 영구히 내치기로 합의할 경우 계속 거주가 가능하다.
이때 해당 가족은 범죄를 저지른 가족 구성원의 집안 출입을 금지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해 관리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뉴욕시는 바로 이 조항을 시범적으로 완화해 제한적이나마 가족 재결합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현재 뉴욕 외에 뉴올리언스와 LA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아들의 마약소지 케이스로 퇴출대상 가족 명단에 오른 콜만은 시범조항의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 콜만은 아들인 타이론의 영구 축출을 거부했다. 뒤늦게 어린 딸 아이 생각에 마음을 바꿨지만 이번엔 항소심 담당판사가 콜만의 ‘지각 합의요청’을 기각했다.
공공주택단지 입주가족이 강제퇴거를 당하면 3년간 재 입주신청이 불가능해진다. 설사 입주신청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언제 빈 방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결국 홈리스 셸터를 전전하며 기약 없는 재 입주를 목 빠지게 기다려야 한다.
1990년대에 마련된 연방 지침에 따라 정부보조 아파트단지의 입주자는 기소여부에 상관없이 단지 경찰에 체포된 사실만으로 일가족이 강제퇴거를 당하게 된다.
당연히 공청회를 거치긴 하지만 입주자의 퇴거를 요청하는 원고 측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민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증거만 제시하면 된다. 게다가 피고 측에게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재정적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형사재판처럼 관선변호인이 따라붙지 않는다.
타이론 콜만은 공공주택단지 아파트에서 그의 모친과 함께 기거하던 2009년 크랙 코케인 소지혐의로 체포됐다.
재판정에서 그의 변호사는 타이론이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사건에 연루됐다. 하필이면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가 들어가지도 않은 방에서 마약이 발견됐다.
그가 경찰에 체포되자 뉴욕시 공공주택국(NYCHA)은 곧바로 콜만 가족의 퇴거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타이론이 재판을 피하기 위해 유죄를 시인하기 전에 퇴거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NYCHA는 완다 가족에 대한 강제퇴거 결정은 타이론의 명백한 범법행위 때문이라고 밝혔다.
타이론은 NYCHA가 콜만 가족의 퇴거를 결정하기 이전에 또다시 경찰에 체포됐다.
다행히 케이스 자체가 기각되긴 했지만 기소여부에 상관없이 체포기록만으로 가족 퇴거사유가 된다는 규정에 두 번이나 저촉된 셈이다.
억울하긴 해도 규정을 위반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NYCHA는 만성적인 렌트 미납도 무시할 수 없는 퇴거 사유였다고 덧붙였다.
퇴거를 기다리는 완다의 마음은 착잡하다.
그녀는 법규나 규정의 기계적인 적용에 심한 불만을 드러냈다. 실질적인 범죄행위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경찰 체포기록만으로 한 가족을 거리로 내모는 뉴욕시 당국의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NYCHA는 ‘법대로’를 앞세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연대책임제가 과연 적법한 것인지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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