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1년 6월 나성지역 협의회로 출범
▶ 이산상봉·비료지원 등 대북교류 성과
[기획시리즈: 한인사회 기관*단체 역사탐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LA 협의회
LA 평통은 미 서부지역 한인들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결집해 평화통일을 실천하기 위해 초당파적으로 출범한 비영리 통일기구다. 공식 명칭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LA 협의회인 LA 평통은 올해로 출범 33년을 맞이했으며, 지난 1981년 6월 문창배 초대 회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LA 지역에서 1기로 처음 선정된 뒤 그동안 15기까지 미주 한인사회 각계 인사 2,653명이 통일자문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LA 평통은 통일을 중심으로 한 한인사회 주요 인사들의 봉사단체인 만큼 커뮤니티 단체로서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기여해 왔다. 한편으로는 회장과 위원 인선 때마다 잡음이 불거져 나오고 일부에서는 한인 인사들의 감투를 위한 단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한인사회의 대표 봉사단체 중 하나인 LA 평통의 33년의 성장기를 정리해 봤다.
■통일 자문회의 정착기
LA 평통의 역할은 한인 및 주류사회에 한국의 통일정책을 올바르게 알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동포사회의 역량을 결집하는데 있다고 돼 있다. LA평통은 이같은 목적으로 지난 1981년 6월5일 나성지역 협의회로 출범했다. 초대 회장에는 남가주 한인상공회의 회장을 역임한 문창배 당시 올림픽마켓 대표가 임명됐다. 취임과 함께 40명의 자문위원들과 한국 서울 잠실체육관에 열린 통일 자문회의에도 참석한 문 회장은 임기동안 미 주류사회에 한국의 통일정책을 바르게 알리고 한인사회 리더들의 통일 준비 참여를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후 2기에서 4기까지 8년 동안 LA 평통을 이끈 이관옥 회장은 LA협의회 역사상 최장수 회장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교수 출신 통일문제 전문가인 이 회장은 당시 한인사회에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주력했다.
특히 이 회장은 LA 협의회와 타 지역협의회 간의 자매결연을 체결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이 기간 LA 협의회는 서울 종로, 용산, 서대문구, 휴스턴 지역과 교류를 나눴으며 수석부의장배 통일기금 마련 골프대회도 2기부터 시작됐다.
5기 안응균 회장 시기에는 해외 지역의 통일기반 조성이 더욱 강화됐고 다양한 통일 운동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실향민으로 그 누구보다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강했던 안 회장은 회장 임기동안 광복절 기념 타종식을 정례화 시켰으며 차세대 컨퍼런스의 전신인 미래 지도자 초청 남북 통일세미나를 개최해 차세대 육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특히 안 회장재임기간인 1992년 4월29일에 LA 폭동이 발생, 128명의 LA 평통자문위원 가운데 12명이 부상을 입거나 사업체가 전소되기도 했다.
■평통 변화기
6, 7대 회장을 역임한 이청광 회장은 LA 평통 출범 이후 14기 동안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평통의 산증인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당시 대학교수로 활동한 이 회장은 통일문제에도 전문성을 갖고 있었으며 LA 협의회를 비영리 연구단체로 등록시켰다.
또 지난 1994년 9월11일에는 샌피드로 우정의 종각에서 1만명이 참가하는 KBS 북미대륙 노래자랑을 개최하는 등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6기부터는 평통 공식명칭도 나성협의회에서 LA 협의회로 변경됐다.
이영송 회장이 이끈 8기에는 상당한 변화가 찾아온다. 1981년 출범초기 LA 협의회 여성 자문위원수는 4명에 불과했지만 이 시기 처음으로 10%선을 넘어섰다. 특히 8기에는 영어권 차세대 자문위원들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한 다양한 차세대 컨퍼런스가 열렸고 평통 사무실도 LA 한인타운 윌셔와 뉴햄프셔 2층의 현재 사무실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 회장 재임기간 LA 평통자문위원 인선이 공개적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10월 LA 총영사관에서 실시된 국정감사에서 작고한 김근태 전 의원은 인선과정에서 빗발치는 투서와 진정서에 대해 질타했으며 자문위원들도 당시 정재문 외통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인선의 무원칙에 대해 지적했다.
한편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취임과 함께 평통의 사무처는 폐지되고 통일부 산하 사무국으로 축소 개편되는 등 햇볕정책으로 인해 평통의 역할과 활동도 변환기를 맞았다.
■통일활동 다양화
LA 평통의 가장 큰 변화는 9기 최계옥 회장 때 일어난다. 전 세계에서가장 규모가 큰 LA지역 협의회에 첫여성 회장으로 임명된 최 회장은 자문위원 간 친목과 단결, 팀웍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또 2000년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추진위원회 구성과 미주 지역에서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시작하는 등 성과도 올렸다.
하지만 9기부터 평통사무처는 인선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LA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인선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공정성을 중시했으나 최 회장 임명과정에서 회장 인선 자체가 LA 한인사회나 총영사관의 추천을 무시한 청와대 작품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10기 LA 평통회장으로 임명된 홍명기 회장 ‘열린 민주평통과 차세대육성’ 등을 기치로 내걸고 특유의 리더십을 과시하면 역대 최대 규모의285명의 자문위원단을 이끌며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다. 특히 홍 회장임기 중인 2002년 10월 106명의 LA협의회 자문위원들과 가족들이 3박4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방문했다.
11대 김광남 회장은 임기 동안 첫 자문위원 연수를 실시했고, 2004년에는 통일 음악회를 개최해 북한 어린이 지원 성금을 모금한 후 방문단을 구성했다. 평통의 이름으로 50여명 자문위원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염소 115마리와 비료 115톤을 농업성대외협력국 국장에게 직접 전달해 해외 민주평통이 대북 교류에 나서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북한 방문 중 방명록에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남겼다는 파문이 일기도 했다.
12기 신남호 회장 때에는 LA 평통이 추진한 이산가족 상봉사업이 결실을 맺었다. 12기 민주평통 및 이산가족 평양방문단 14명은 2007년 5월14일부터 22일까지 북한을 방문 3만달러 상당의 비료 120톤과 비타민을북측에 전달했고 오태주씨 등 남가주 지역 이산가족 6명은 북한의 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했다.
13기 차종환 회장 때에도 대북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4월7일자문위원, 실향민, 일반 한인 등 10명 방북단과 북한을 방문해 의약품을 전달하는 등의 사업들 추진했다.
14기 이서희 회장 재임기간 LA 평통은 한인사회 내 통일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풀뿌리 통일운동인 통일무지개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차세대 통일일꾼 양성 및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해외통일 한글 교재를 발간했고 분과위원회를 활성화 시켰다. 하지만 평통 골프대회에서 발생한 가짜 홀인원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14기 때에는 오렌지카운티와 샌디에고 지역 평통이 LA 평통에서 분리돼 지역 협의회로 독립 출범했다.
2009년 7월1일 신설된 OC와 SD 협의회에는 오렌지카운티, 리버사이드, 샌디에고, 임피리얼, 네바다, 애리조나,뉴멕시코 등 7개 지역이 포함됐다.
이어 현 최재현 회장이 이끄는 15,16기에는 한국과 주류사회 및 한인사회의 활발한 교류를 통한 보다 활발한 통일사업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1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최 회장은 지난 3년간 탈북자 지원, 차세대 세미나, 생생토크 통일 콘서트 개최와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를 이어왔으며 LA 평통 30년사 편찬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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