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한인청소년 담당 기관 KYC로 출발
▶ 다인종, 다문화 주민들을 위한 봉사 활동
KYCC는 저소득층 아파트 건설 등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통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멘로 아파트 기공식을 갖고 있는 모습.
[기획시리즈/ 한인사화 기관.단체 역사탐방]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
새로운 이민 물결이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 남가주 한인사회가 발전의 토대를 닦고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한인 1세 단체들 뿐 아니라 1.5세와 2세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1.5세 단체’들의 기여가 있었다. 그 대표적 단체 중 하나가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oreatown Youth & Community Center, KYCC)이다. 이민사회에서 맞벌이 등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한인 부모들을 위한 청소년 문제 해결에서 출발한 KYCC는 40년 가까운는 활동을 통해 한인사회를 넘어 한인타운과 인근 지역 모든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대표적 비영리 커뮤니티 봉사단체로 자리잡았고 한인과 비한인을 포함해 직원수가 80명에 육박하는 대형 비영리단체로 성장했다.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적 비영리기관 중 하나인 KYCC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본다.
■ 한인사회 최초 청소년 담당 기관
청소년회관은 2-3세들의 마약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계 커뮤니티가 아시안 비영리기관으로 설립한 ‘아시안 아메리칸 약물방지 프로그램(AADAP)’의 한인사회 아웃리치 센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75년 2월14일 LA 한인타운 크랜셔 블러버드에 AADAP의 한인 청소년들을 위한 독자적인 공간이 한인청소년회관(Korean Youth Center, KYC)라는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인타운 청소년회관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 초창기에는 천방욱 목사와 김인환씨가 참여해 헌신적인 봉사를 이끌었다.
당시는 비록 AADAP의 산하 조직으로 재정지원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한인사회 내 최초로 등장한 청소년 담당 전문기관이란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 1980년대 독립기관 출범
한인청소년회관에는 1977년 UCLA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제인 김씨가 합류하면서 스태프가 보강됐고, 1980년대 들어 한인사회의 현실에 맞는 운영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제기되기 AADAP의 산하에서 벗어나 1982년 독립을 하게 된다. 변호사가 된 제인 김씨는 KYC가 독립한 뒤 초대 관장을 맡으며 사업 영역을 확장시키는 등 단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일조하게 된다.
청소년 회관은 카운슬링과 이중언어 상담 프로그램 등 청소년 프로그램과 함께 부부세미나,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여름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편 한인타운 미화작업의 일환으로 낙서지우기 운동을 펼치고, 고용 및 취업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사회적 문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고 재정 확충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 당시 청소년 회관에서 활동했던 인사로는 토니 김, 찰스 김 전 KAC 전국 사무총장, 김영빈, 박진영, 벤자민 허, 애니 조, 샘 리, 미선 조씨 등이 있으며, 이들은 훗날 각기 다른 방면에서 활동하며 한인사회 발전에 공헌했다. 특히 1985년 7월부터는 UCLA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던 송정호씨(현재 관장)가 근무를 시작했다.
■ 90년대 변화와 발전의 시기
1988년 청소년회관은 제인 김 관장의 후임으로 김봉환씨를 새 관장으로 맞으면서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게 된다. 김봉환 신임 관장은 제인 김 관장 시절 회관건립위원회가 사들인 윌셔와 윌튼 인근 주거지(986 Ingraham St.)를 저소득층 아파트 및 청소년 회관 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복합건물로 개발하기 시작, 1994년 완공했다.
김 관장은 재임 중 1992년 4월 LA폭동과 1994년 1월 노스리지 대지진을 겪으면서, 그동안 한인 청소년에 집중됐던 업무 영역을 타인종으로까지 돌리고, 경제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폭동 이후 일터를 잃은 수많은 한인 자영업자들을 위해 경제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어 스몰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원, SBA 융자 안내, 고용 및 취업 지원사업 등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아태 스몰비즈니스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 낙서 지우기는 물론 나무심기 등 환경미화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90년대에는 청소년회관에 중요한 외적 변화가 있었다. 바로 1992년 4월 LA 폭동을 계기로 청소년 문제를 넘어 커뮤니티 이슈에 보다 다가선다는 의미에서 단체 명칭에 ‘커뮤니티’를 추가, 1993년 영어 명칭을 KYCC(Korean Youth & Community Center)로 바꾼 것이다.
■ 시스템 강화 및 비약 성장
1998년 9월 김봉환 관장의 뒤를 이어 10여 년간 청소년회관에서 근무하던 송정호씨가 관장으로 취임한다.
송정호 관장은 청소년회관 운영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시스템 강화작업에 착수, 운영과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안정적인 재정확보에 나섰다. 이와 함께 타인종 인사들을 이사로 전격 영입하기 시작했다. 한인만을 위한 것에서 탈피, 모든 인종을 아우를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야 새로운 차원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송 관장은 이같은 노력은 상당한 결실을 맺었고, 특히 재정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같은 배경에서 2005년에는 한인사회의 바운더리를 뛰어 넘어 코리아타운이라는 다인종·다문화 사회에서 모든 주민들을 위한 비영리 봉사기관으로서의 역할 증대에 맞춰 영어 명칭을 ‘Korean’ 대신 ‘Koreatown’으로 바꾸는 변화를 단행, 현재의 ‘Koreatown Youth & Community Center)가 탄생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인 비영리단체들이 공동 매입한 LA 한인타운 6가와 하버드의 코아빌딩으로 본부를 옮기면서 KYCC는 한인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벗어나 히스패닉, 필리핀, 타이 커뮤니티 등 한인타운 내 다민족 커뮤니티 아웃리치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정호 관장은 향후 KYCC가 나야갈 방향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질적인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들에 대해 전면적인 평가 작업을 벌여 방대한 프로그램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더욱 실질적인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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