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IA,공화 “테러방지 등 기여” 주장
▶ 물고문, 매달기 등 육체, 정신적 고통 극대화
■ CIA 고문보고서 공개
9.11 사태 이후 테러 용의자에 대한 미 중앙정보국(CIA)의 고문실태를 담은 연방 상원정보위원회 보고서가 9일 공개돼 정가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비밀로 분류된 총 6,800쪽 분량의 내용을 약 500쪽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알카에다 대원 등을 상대로 한 고문은 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것일 뿐 아니라 효과적이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CIA가 유럽과 아시아의 비밀시설에 수감된 알카에다 대원 등 테러 용의자들에게 적용한 고문실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보고서는 CIA가 구사한 이른바 ‘선진 심문 프로그램’은 성고문 위협과 물고문 등 CIA가 일반 국민이나 의회에 설명해온 것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잔혹했지만, 테러위협을 막을 정보를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CIA와 부시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매우 효과적이고 다수의 테러 음모를 분쇄했다면서 여론과 의회를 호도했다는 게 보고서의 골자다.
보고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CIA의 가혹한 심문기법은 미국과 미 국민의 가치에 위배되는 것이며 그것이 내가 취임하자마자 고문을 금지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러나 이번 보고서 공개가 테러 집단이나 극단주의자 등에 의한 보복 공격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외주요 공관시설에 대한 경비를 강화했다. 국방부도 지난 주말 세계 주요 지역의 미군 지휘관들에게 경계태세를 높이도록 지시한 바 있다.
여권의 긍정적 반응과 대조적으로 CIA 등 정보 당국과 공화당은 보고서 공개에 크게 반발했다. 존 브레넌 CIA 국장은 과거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CIA의 조사기법이 테러 위협을 막고 실제 공격 음모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체 검토한 바로는 선진심문 프로그램을 통해 테러 계획을 좌절시키고 테러범 체포와 미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데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색스비 챔블리스(조지아) 상원정보위 공화당 간사도 9일 공동 성명을 내고 CIA의 이런 조사방식이 주요 테러 용의자를 잡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고 이번 보고서 공개가 미국 국가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실태보고서에 적시된 CIA의 잔혹행위가 대부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자행된 것이어서 백악관을 정점으로 하는 여권과 중간선거를 통해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사이의 정치적 긴장감과 마찰음도 커지고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는 차기 의회 개원에 앞서 국익과 국가안보를 외면한 채 공화당과 전 부시 행정부 흠집 내기에 급급했다고 비난했다.
■ 선진 심문기법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행위는 다양한 가혹행위 방법을 조합해 단순히 죽음의 공포를 주는 수준을 넘어서 피고문자의 정신 자체를 파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워터보딩’, 즉 물고문의 경우 고문 대상자가 얼굴로 떨어지는 물을 피하지 못하도록 고문 행위자가 얼굴이나 턱을 압박한 것은 물론, 행위자가 손으로 대상자의 턱 주변에서 물이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대상자의 입과 코가 실제로 물에 잠기는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CIA 자체 기준에서 최대 지속시간으로 설정한 20분을 훌쩍 넘긴 30분 이상 계속해서 ‘워터보딩’을 가한 것은 물론, 특정한 대상자에게 적어도 183번의 ‘워터보딩’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
고문 대상자의 신체에 강제로 물을 주입하는 행위도 이뤄졌다.
주로 대상자의 직장으로 물을 주입했으며, 이 행위에 대해 CIA 관계자들은 대상자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는 효과적인 심문방법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대상자의 정신적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감각 이탈’이라는 기법도 있었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포함해 고문 대상자의 모든 체모를 깎아내고 나서, 옷을 모두 벗기고 불편할 정도로 낮은 온도의 흰 방에 집어넣은 다음, 매우 밝은 조명을 방 안에 켜고 매우 큰 소리의 음악을 계속 듣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구타는 물론 손을 머리 위로 묶은 다음 매달기, 잠 안 재우기, 좁은공간에 강제로 집어넣기 같은 가혹행위들도 행해졌는데 이런 행위들이 개별적으로 이뤄졌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혼합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상자의 눈을 가린 채 총구를 대상자의 머리에 댄 뒤 대상자의 몸 가까운 곳에서 전동 드릴을 작동시키는 행위, 빗자루 손잡이를 성고문 도구로 쓰겠다고 협박한 행위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를 통해 고문행위자는 대상자가 7일 이상 잠들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었고, 한 대상자에게 길게는 17일 연속으로 고문이 이뤄지기도 했다.
고문 도중 숨진 사람도 물론 있었다. 2002년 11월 한 외국 비밀 수감시설에서는 벽에 고정된 쇠사슬로 묶은 한 대상자를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눕게 한 뒤 ‘비협조적’이라고 판단될 때마다 대상자의 옷을 벗기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고문 둘째 날 이 대상자는 저체온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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