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내 공원서 쓸데없이 어슬렁 거려도‘딱지’
▶ 계단 입구에 모여 잡담한다고 불심검문 다반사
■ 경찰의 과도한 순찰활동에 입주자들 ‘분통’
뉴욕 저소득층 아파트단지의 흑인 입주자에게 경관은 상당히 ‘불편한 존재’다. 그들의 일상적 거주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흑인 입주자들은 외부인에 불과한 경관의 시시콜콜한 ‘갑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아파트 건물 내부의 공용 공간에서 “쓸데없이 죽친다”는 이유로 ‘딱지’를 떼이거나 몇몇 동네 친구들과 계단 입구에서 잡담을 나누다가 불심검문을 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웃동네 친구들이 무단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아파트 입주자임을 입증했지만 이유 없이 어슬렁거린다는 혐의로 경고를 받은 흑인들도 적지 않다.
공용 공간에서 죽친다든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구내에서 배회하는 행위는 형사법에 규정된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뉴욕 공공주택국 규정에는 분명 위배된다.
입주자들의 삶을 규제하는 주택국의 규정은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아이들은 복도에서 놀 수 없고, 관리사무실의 사전허가 없이는 바비큐를 만들 수도 없다.
거듭된 규정위반으로 벌점이 쌓인 입주자는 퇴거조치를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가난한 세입자들은 경찰이 발부하는 딱지에 대단히 민감하다. 경고 누적으로 퇴거조치를 당하면 빈손으로 길가에 나앉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자연히 아파트 단지를 순찰하는 경관들과 마주치면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지레 위축이 되고 만다. 이곳에서는 늘 경관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이다.
최근 브루클린 소재 레드 훅 하우시즈의 흑인 입주자 로널드 토머스(24)는 아파트 건물 밖에서 피자 배달원을 기다리다가 두 명의 순찰경관으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다.
신분증을 두고 나온 그는 상황을 설명한 후 “방에 올라가서 갖고 오겠다”고 사정했지만 경관들은 막무가내로 그에게 딱지를 떼려 들었다. 때마침 피자배달원이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아무런 잘못 없’이 경고를 먹을 뻔했다.
토머스는 경찰의 ‘갑질’ 때문에 공공주택단지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세입자들은 땅거미가 진 이후 아파트 단지 안의 공원에서 산책을 즐길 수 없다. 아파트 건물 앞에서 조금만 오래 서 있어도 경고를 먹는다. 이렇듯 제약이 심하다 보니 가끔씩 ‘창살 없는 감옥’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는 푸념이다.
스탠튼 아일랜드 거리에서 개비담배를 팔던 흑인 에릭 가너가 지난 7월 백인 경관에 목 졸려 숨진데 이어 11월 아카이 걸리마저 경관의 손에 사망하자 소수계 밀집지역의 우발적 경범사건에 대한 뉴욕 경찰당국의 과도한 법집행과 저소득층이 모여사는 공공주택단지를 대상으로 한 강압적 순찰활동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시 공공주택위원회도 걸리의 사망을 계기로 Nycha로 알려진 뉴욕주택국 관할 아파트 건물의 안전성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한다. 걸리는 그가 살던 영세민 아파트 건물의 층계어귀에 서 있다가 불심검문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불심검문의 이유는 단지 그가 어두운 층계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계단 입구의 조명시설은 고장이 난 상태였다.
공공주택단지에 대한 순찰활동은 50여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원래의 담당 주체는 경찰이 아니라 자경단이었다. 경찰과는 별도 조직인 자경단은 자체 규정을 어긴 입주자들을 상대로 불심검문을 빈번하게 실시했다.
이들의 활동근거는 뉴욕주택국이 작성한 규정이었다. 자경단은 규정 위반자들을 적발하는 외에 수리를 필요로 하는 시설을 살피는 업무도 함께 담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경단은 해체됐지만, 그들이 담당했던 임무는 고스란히 경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금도 경찰의 공공주택단지 순찰은 뉴욕주택국의 규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빈번하게 실시되는 입주자들에 대한 불심검문이나 몸수색을 정당화할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경관들은 Nycha 규정에 의거해 순찰활동을 펼치면서 위반자에게 경고딱지를 발부하고, 현장 보고서를 작성해 뉴욕공공주택국에 제출한다.
주택국 담당자는 순찰경관이 넘긴 현장 보고서를 살펴 경고가 누적된 관할 건물의 입주자에게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출두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공공주택 입주자들의 퇴거 케이스를 담당하는 사우스 브루클린 법률구제 서비스의 레베카 그린버그는 한두 번 규정을 위반했다 해서 퇴거를 당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물론 순찰 경찰은 규정 위반자 단속뿐 아니라 보수를 필요로 하는 시설물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뉴욕공공주택국은 경찰의 현장 보고서를 근거로 노후시설물에 대한 개보수 작업을 결정한다.
경찰이 공공주택단지 순찰을 통해 이중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이야기지만 현장 보고서를 살펴보면 보수를 필요로 하는 시설물에 대한 지적보다는 규정위반 적발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뉴욕공공주택국 소속 아파트단지 입주자들의 수는 40만명을 웃돈다. 공공주택단지의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다는 얘기다.
당연히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는 입주자들이라든지 복도를 운동장 삼아 심한 장난을 치는 시끄러운 10대 청소년들을 단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다보니 경찰의 개입을 반기는 입주자들도 더러 있다.
그 중 한 명인 화니타 브라운(52)은 “경관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입주자들은 무언가 숨길 게 있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브라운이 입주한 브루클린의 부시위크 하우시스 인근 지역의 범죄발생률은 올해 무려 40%가 증가했다. 다른 곳의 사정도 비슷하다. 공공주택국의 저소득층 아파트는 거의 대부분 우범지역에 몰려 있다.
입주자들은 경찰의 과도한 법집행에 불만을 터뜨리지만 해당 지역 순찰 경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범죄예방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소득층 아파트 단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범법행위들로 골머리를 앓는 경찰은 사전예방 차원에서 공격적인 순찰활동을 펼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다보니 곳곳에서 인권침해와 불필요한 물리력 사용 등의 잡음이 튀어나오곤 한다.
전혀 법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않았는데, 단지 건물 앞에 오래 서 있는다는 이유만으로 경관들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거나 몸수색을 당하게 되면 누구라도 분통이 터지게 마련이다.
복도에서 시끄럽게 군다고, 아니면 계단 앞에 둘러서서 잡담을 한다고 순찰경관에게 즉석 경고장을 발부 받으면 ‘뚜껑’이 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 개인의 사적인 주거공간은 ‘교도소’가 되고, 입주자는 ‘죄수’로 전락하게 된다.
문제는 또 있다. 존 제이 형사법 전문대학의 조교수 프리츠 움바크는 경찰이 마약 등 법으로 금지된 물품을 찾아내기 위한 구실로 공공주택국의 규정을 이용해 정당치 못한 불심검문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제든지 위헌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본보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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