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우한 가정환경 탓 악덕 포주에 잡혀 폭행·마약·매춘에 신음하다 겨우 해방
▶ 이젠 대학생·직장인으로 새 세상 꿈 꿔
미네소타 세인트 폴 소재 여성 보호시설인 브리타니스 플레이스에서 마키타 클라디(오른쪽)과 그녀의 딸 라케이샤 리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마키타는 첫 딸 브리타니를 잃은 후 그녀의 이름을 딴 인신매매 피해여성 보호시설을 설립하고 직접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인신매매 피해자 재활 지원하는 ‘사마리탄 위민’
사방이 적막한 오후, 송(Song 가명·25)은 눈부신 햇살을 받아가며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다. 이제 막 꽃을 피운 주치니와 열병식 하듯 줄지어 늘어선 오이나무 등이 그녀의 눈 속 깊이 빨려 들어온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곳에서 1마일가량 떨어진 웨스트 볼티모어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거리의 여자’였다. 하지만 인신매매 피해 여성 지원 프로그램인 ‘사마리탄 위민’ 덕분에 송은 한가로이 정원 일을 해가며 과거의 끔찍한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그녀는 열세 살 때 처음으로 911 신고를 했다.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구급차를 부른 후 파랗게 질린 여동생을 방안으로 밀어 넣고 엄마의 상처를 싸 맬 타월을 가지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짧은 거리를 뛰어가면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피범벅이 된 거실마루는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출혈을 막기 위해 타월로 칭칭 처맨 엄마의 양 손을 배 위에 포개 놓은 뒤 그 위에 주저앉아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엄마는 퇴원 후 “너 때문에 헛지랄을 했다”며 딸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손찌검을 해댔다.
18세가 되던 해 그녀는 고향인 뉴저지를 떠나 플로리다로 가출했고,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송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인 동시에 그녀의 첫 번째 포주였다.
중증 마약중독자인 기둥서방은 코케인과 헤로인 등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송에게 매춘을 강요했다. 몸을 팔기 시작하면서 송도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중독자로 전락했다.
약 1년 전 체포돼 마지막으로 법정에 섰을 때 그녀는 담당판사에게 자신을 장기 감호시설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형기를 마친 후 거리의 생활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30일 단기 감호를 선고받고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송은 퇴소를 며칠 앞두고 마약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남성으로부터 사마리탄 위민의 전화번호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사마리탄 위민의 담당자로부터 “마침 빈자리가 하나 생겼다”는 대답을 들은 것. 그 때 송이 목청껏 내지른 첫마디는 “오, 하나님”이었다.
장기 보호시설에서의 생활은 기적 그 자체였다. 100파운드의 체중에 주사바늘 자국과 멍으로 얼룩졌던 그녀의 몸은 초반의 금단증세를 딛고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마음의 상처도 바뀐 환경 속에서 아물어갔다.
지금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창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대학생이다.
종교기반 여성 보호시설인 사마리탄 위민은 종교단체들이 제공하는 무상 지원과 독지가들의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2011년 문을 열었고, 정부의 펀딩은 받지 않는다.
23에이커의 널찍한 농장에 둘러싸인 두 채의 맨션에는 14명의 인신매매 피해 여성이 최고 2년 동안 머물 수 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은 단체 측이 전액 부담한다.
미국에는 사마리탄 위민처럼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을 수용하는 장기 보호시설이 거의 없다. 반면 법집행 기관들이 인신매매 범죄와의 전쟁을 확대하면서 악덕 포주들의 손에서 해방된 피해자들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포주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증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몸을 의탁할 곳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그러나 지방이건 중앙이건 관련 정부기관 모두가 너나없이 예산난에 허덕이는 형편이라 시설 확충은 요구하기도, 기대하기도 힘들다.
사마리탄 위민의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인 진 얼러트는 인신매매 피해 여성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정부 당국자의 문의전화가 매일 한 통 이상 걸려온다고 밝혔다.
이곳에 들어온 여성들은 대부분 극빈층에 속한 결손가정 출신이다. 보통 열 살을 전후해 포주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생일파티를 해본 적도, 디즈니 영화를 본 적도 없다. 가족단위의 피크닉은 개념조차 생소하다.
얼러트는 입소자들이 시설에 머무는 동안 영화 관람도 시켜주고 피크닉 자리도 마련해 준다.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회로 재 편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시도이다.
1년째 사마리탄 위민에 머물고 있는 제네시스(가명·32)는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코케인을 경험했다. 제공자는 엄마였다. 미성년자 스트리퍼로 10대를 보낸 그녀는 18세에 첫 번째 ‘별’을 달았고, 폭력적인 포주의 ‘소유물’이 됐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아이를 잃었고 결국 중증 마약중독자가 됐다.
그녀의 포주는 집밖 외출을 일체 허락하지 않았다. 방에 도청기를 비롯한 감시장치를 설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툭하면 그가 사들인 소유물들을 무거운 의자에 쇠사슬로 묶어두었다.
폭력은 일상적으로 반복됐다. 총을 쏘아 부상을 입힌 적도 있었다. 권총자루로 후려치는 것은 가벼운 처벌에 해당했다. 굶기는 것 역시 예사였다. 송아지에 낙인을 찍듯, 소유물의 팔목마다 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제네시스는 사마리탄 위민에 들어온 후 3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이 ‘지옥’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평생을 지내는 박쥐처럼, 제네시스는 닫힌 세계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없이 살아 왔다.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주어진 삶의 질을 평가할 기준이 없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어린 나이에 시궁창에 처박힌 인신매매 피해자들처럼 제네시스 역시 인생이란 으레 그런 것이려니 했다.
사마리탄 위민에 들어온 지 6개월째인 제네시스는 요즘 자주 눈물을 흘린다. 입주자들의 아픈 사연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꺼이꺼이 운다.
그러나 제네시스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한다. 과거에 묶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롱아일랜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부모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버튼(가명·27)은 장기 보호시설 입주자들 중 ‘두 개의 세계’를 모두 경험한 예외적인 케이스다.
마약에 빠져 대학을 중퇴한 버튼은 부모에 의해 캘리포니아의 재활원에 보내졌다. 거기서 버튼은 포주에 걸려들었고, 이후 7년간 서부 연안지역을 오르내리며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녔다.
그녀는 1년 전 포주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코뼈와 눈두덩 뼈가 함몰됐다. 배와 등에 얼마나 심하게 발길질을 당했는지 담당의사가 멍 자국과 상처를 보고 당시 포주가 어떤 구두를 신고 있었는지 알아맞혔을 정도였다. 몸이 아파 스트립쇼를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사막으로 끌려가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한 이유의 전부였다.
버튼은 사마리탄 위민에 들어온 후 부모와 재회했고, 복학했다. 탈선위험 아동 카운슬링을 위해 상담원 자격증도 취득했다. 수차례 인신매매 실태에 관한 의회 증언도 했다.
그녀는 지금도 종종 악몽에 시달린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 때문에 입주 후 거의 반년 동안 고통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점차 무디어졌고 체념이 머물던 자리에 조금씩 희망이 비집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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