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명중 숨진 스페인 재벌, 고향 바르셀로나시에 유산 기증
▶ 렘브란트·엘 그레코·고야의 걸작 등 컬렉션 포함된 대저택
프랑코 독재정권 몰락 후 망명한 스위스에서 숨진 스페인의 거부 훌리오 무노즈 라모네트가 바르셀로나 시에 기증한 저택.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 소유의 호화 맨션을 안내하던 미술사학자 누리아 리베로는 그림이 걸렸던 못 자국만 남은 채 비어 있는 곳곳의 벽을 가리키며 아쉬워했다. 이 저택은 카탈루냐 출신의 스페인 재벌 훌리오 무노즈 라모네트가 1991년 사망하면서 고향인 바르셀로나 시에 기증한 것으로 바르셀로나 황금기의 유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사라진 것은 그저 그런 그림들이 아니다. 렘브란트, 엘 그레코, 고야의 명작들과 함께 현관홀에 걸렸던 16세기 작품 등 플레미시 태피스트리도 상당수다. 바르셀로나 시당국은 무려 658점의 예술품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352점의 그림을 포함한 이 대규모의 예술품 증발과 관련 시당국은 라모네트의 딸 4명을 절도와 사기혐의로 고발했다.
라모네트 유언장의 유효성을 둘러싼 17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스페인 대법원이 바르셀로나 시에게 최종 승소판결을 안겨준 것은 2012년이었다. 그러나 1년 후 딸들로부터 저택의 열쇠를 건네받은 시당국은 딸들이 아버지의 예술품 컬렉션 중 상당수를 몰래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류 박물관을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양과 최고수준의 예술품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시를 대변하는 형사전문 변호사 마크 몰린스는 말한다. 그는 담당판사가 기소된 딸들을 2월 중 법정 소환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형사재판은 라모네트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시당국이 오랫동안 벌여온 장기 재판의 최근 국면이다.
딸들은 절도를 포함한 어떤 범법행위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의 대변인 세르지오 아즈코나는 바르셀로나 시가 1998년 당시 시당국이 검토한 작품목록과 함께 저택에 속한 모든 예술품을 인수받았다고 말했다. 딸들이 소유한 예술품들은 아버지 소유의 다른 회사들과 그외 커넥션을 통해 받은 것들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시당국은 저택에 있었던 주요 예술품 컬렉션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없어졌다고 여전히 주장한다. 라모네트가 사망하기 전인 1971년 작성된 작품목록을 제시하는 한편 시당국은 라모네트 사망 후 딸들의 요청에 의해 예술품들을 감정해준 하바드대 로리 그로스 교수의 증언이 재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즈코나는 맨션에 남아있는 작품들이 71년 작성된 목록보다 적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딸들이 빼내간 것이 아니라 라모네트 자신이 생전에 처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라모네트의 인생 자체가 예술품 도난 사건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웠다. 스페인 내전이후 직물에서 보험까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치며 스페인 최고 부자 중 하나로 성공한 그는 개인적 친분과 비즈니스 커넥션을 통해 그는 최고의 예술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미술사학자 리베로에 의하면 최고의 컬렉션을 이룬 데는 운도 상당히 작용했다. 그 자신은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고 구매할 때 전문가의 조언도 구하지 않아 엄청난 돈을 퍼붓고도 신통치 않은 작품을 사거나 모조품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컬렉션 중 최고의 작품들은 파산한 한 기업가에게서 담보로 잡았던 예술품들이었다.
1946년 스페인 최고 은행가의 딸과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린 그는 영향력을 카탈루냐 밖으로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고가의 예술품으로 가득 찬 저택에서 당대의 세력가들을 초청해 밤마다 돔 페리뇽 샴페인을 터트리는 화려한 파티를 주최했다. 내전 후 그의 영향력은 프랑코 독재정권과의 유착으로 날로 강화되었다.
1980년대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회복된 후 라모네트는 대규모 보험사기 수사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스위스로 망명, 그곳의 럭셔리 호텔에서 여생을 보냈다.
라모네트가 스위스에서 맨션을 바르셀로나 시에 남긴다는 유언을 새로 작성해 공증을 맡긴 사실은 그가 죽은 후 한 친구에 의해 당국에 알려졌다. 딸들은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법정투쟁은 스페인과 스위스에서 2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바르셀로나 시 변호인들은 라모네트가 유산을 딸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시에 기증한 것은 “아마도 그가 스위스에서 병석에 눕게 되었을 때 딸들이 돌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시는 2월 중 맨션의 정원을 다시 만들 예정이며 점차 일반에게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진 예술품 중 어느 것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에 따라 맨션을 아트센터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프랑코 독재정권과의 유착관계로 인해 일각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성공한 기업가가 고향에 선사한 귀중한 선물을 공공이익을 위해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 시당국의 방침이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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