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이라는 중국 시인을 모르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두보는 인간의 삶과 고통을, 이태백은 자연과 인생을 읊은 시인들이다. 후대 사람들이 이태백을 ‘시선(詩仙)이라고 할 정도로 천여개의 시를 삶속에서 숨 쉬듯이 썼다. 그가 쓴 시 중에서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를 보면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생을 보는 낭만적인 태도를 찾을 수 있다. ”내게 묻기를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은둔해 사는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한가로움이 저절로 있기 때문이라네(問余何事栖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누구나가 자기 자신에게나 또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질문이 없다면 생각이 없는 것이고, 생각이 없다면 변화가 없기에 모든 인생은 질문으로 시작이 된다. 그래서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고,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를 찾은 사람이고, 인생을 발견한 사람일 것이다.
사람이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인생과 삶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이태백도 삶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살았다. 아니 어떤 사람들이 이태백이 왜 그렇게 깊은 산속에서 혼자 세상을 등지고 사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이태백은 이렇게 대답을 한 것이다. “그 질문에 구태여 대답할 필요가 없어 나는 웃을 수밖에 없다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라네.” 그 질문이 터무니 없어서 웃은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맞는 답을 줄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대한 씁쓸한 웃음이 아닌 나름대로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의 안락을 누리고 있기에 고요하고도 평안한 낙을 즐기고 있는 것을 표현하였다. 그 말이 ‘심자한(心自閑)’, 마음은 자연스레 한가한 상태, 이것을 영적으로 말하면 평안(Peace)인 것이다. 이 ‘심자한’만 있다면 무엇이 부럽겠는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 ‘심자한’을 가진 사람이 최고의 행복자인 것이다.
성경은 그 길이 예수님이라고 말씀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14:6).
누구나가 자기 길이 있다. 자기 행복이 있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이 길을 선택한 자만이 웃을 수 있다. 나의 길은 나만의 것이다. 옆에서 어느 누가 그 길에 대해서 말하고, 그 길이 잘못된 것이고, 그 길은 어려운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 길은 자기의 길이다.
그 길을 찾는 사람이 ‘소위부답 심자한(笑而不答 心自閑)’을 누리는 사람이다.
김범수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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