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떠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일상생활 중에도 수시로 나를 떠나서 나 스스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마치 드라마 속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의 장례식 장면을 바라보듯 그렇게 나 자신을 바라보노라면, 지금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곧 우주의 중심이다. 그래서 자기를 중심에 놓고 모든 사물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사물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옛말에 “남의 얼굴의 티끌은 보아도 제 눈의 대들보는 못 본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화를 내거나 남과 다투게 되는 것도 대개 그 바탕에는 ‘나는 항상 옳다’거나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대국 당사자는 자기 게임에 빠져서 잘 보지 못하는 묘수도 옆에서 어깨너머로 보는 제삼자의 눈에는 쉽게 보이는 법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 즉 역지사지(易之思之)란 말도 다 자기 속에 갇혀있던 생각의 관점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객관적으로 보라는 말이다.
찰스 디킨스의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롤’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누구의 훈계나 가르침이 없어도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영웅 중의 한 사람인 알렉산더 대왕도 “나는 세계를 정복했지만 나 자신을 정복할 수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도 “우리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다” 라고 했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을 지(智)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고 했다. 또, 남을 이기는 것을 유력(有力)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고 했다.
남의 시비선악(是非善惡)을 따지고, 품성을 재단하는데 뛰어난 이를 현명한 사람이라 하고, 남을 힘으로 누르고, 재력이나 지력으로 지배하는 자를 강자라고 부르지만, 노자는 이를 단순히 ‘힘이 있는 것’일 뿐이라 한 것이다. 노자는 늘 밖을 향해 있는 우리의 눈을 안으로 돌리고 나 자신을 깊이 보는 눈을 가질 때 비로소 나와 세계를 함께 이해하게 되어 ‘진짜 현명한 자’ ‘진짜 강한 자’가 된다고 설파한 것이다.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 자신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데,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하지 않았던가.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을까?얼마나 더 자주 나를 떠나야 이 어리석은 미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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