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때 점심을 먹고 나면 동료와 회사 근처를 거닐며 잡담을 나눴다. 무게를 잡던 우리는 그날 ‘identity’로 제법 열을 올렸다. identity라고 하면 금방 알 내용을 ‘정체성(正體性 )’으로 표기하여 혼란을 주던 부장님에 관한 뒷말이었다. 한 명민한 동료는 identity를 ‘그것을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나는 그 확실한 정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것’으로 보면 내가 한국인인 identity는 너무 많다. 내가 태어난 곳이 한국이고, 내 심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탈탈 표현해도 차고 넘치는 언어가 한글이고, 김치 없이는 먹어도 먹지 않은 듯 개운하지 않은 입맛이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또 1997년만 생각하면 IMF 때 금 모으기에 동참하여 집안에 이리저리 흩어졌던 금붙이들을 싹싹 모아 나라를 살리겠다고 달려나갔던 어머니의 극성과 2002년만 생각하면 벅차올랐던 월드컵의 감동이 나의 기억에서 빠져나갈 줄을 모르니 난 한국인이다.
그런 내가 요즘 TV, 신문, SNS를 검색하다가 울컥하고 분함을 느낀다. 바로 ‘독도’에 관한 자성 때문이다. 독도를 태어나 한 번도 의구심 없이 인지했다. 전라도의 드넓은 평야가, 경상도의 고즈넉한 산사가, 제주도의 푸른 앞바다가 우리의 땅이듯 독도는 늘 울릉도 옆에 있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한 쌍이듯 울릉도와 한 쌍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 땅을 경제적 논리, 군사적 논리로 일본이 들먹일 때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금 묻게 된다.
정의는 힘이 없는 이가 힘이 있는 이의 과욕에 괴롭힘을 당할 때 지켜줄 힘이 있어야 한다. 정의는 정보력이 빠른 자가 정보력이 느린 자의 앞마당을 자신의 것이라고 관공서에 등록해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바로잡아 줘야 힘이 있는 것이다. 정의란 부자가 자신의 마음대로 다른 부자들과 어울려 순진한 자를 능욕할 때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해줄 다른 정의로운 부자가 있을 때만 실현되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남아있는 세대에 산다고 믿고 싶은 이가 근현대 식민지 역사에서 벌어진 여러 참상이 지금도 계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바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힘이 없는 사람도 자신의 것을 공연히 빼앗기지 않고 평화롭고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는 바로 그런 상태다. 나의 정의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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