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도 내 몸 처럼...6개월마다 정기검진 해주세요”
이민 생계수단으로 배운 기술
30년 넘게 종사, 자부심도 최고
고객중 70~80%가 단골
가격대비 품질 한국피아노가 최고
“싸게 해주면 최고” 한인들과 달리
외국인들 비용 상관없이 맡겨
30년 넘게 피아노 조율사의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한인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직업에 대한 인식이나 수입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조율사로 살아오면서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피아노 제반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의식을 갖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한인 피아노 조율사 제임스 박(59)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서 법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1945년 광복 후 좌우익 혼란기에는 교편생활을 했다. 6.25 전쟁은 정훈장교 1기로 참전했다. 군사정권이 시작되면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전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가 반혁명사건으로 실직당하고 감시를 받게 됐다. 그로인해 가정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만 생각하며 청렴결백하게 사시던 아버지가 그런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 당시 그는 겨우 초등학교 3학년. 그 때부터 그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와 집만 오가며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한다.
내성적으로 성장한 이유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미국 이민을 결심한다. 큰 누님이 미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 문제가 이민의 걸림돌이었다. 그 당시는 군을 제대해야 이민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 고교 졸업 후 반항, 탈출과 더불어 사회경험을 쌓고자 강원도 상동광산을 찾아갔다.
그 곳에서 일하다 괴질을 앓게 돼 장 수술을 받았다. 해군을 지원하려 했으나 방위로 군 문제를 해결하게 된 이유다. 그는 미 이민을 준비하는 동안 성수동에서 피아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무공무원이 부당한 트집에 며칠 동안 맞서고 있던 상황에서 비자가 나와, 바로 다음 날 미국 비행기를 타게 됐다.
그는 ‘아버지의 올바른 삶처럼, 정당하게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뇌물을 달라는 공무원의 부당한 요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때마침 기다리던 비자가 나와 바로 미국으로 왔다. 결국 한국에 남아 있던 형이 돈과 피아노로 마무리 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고 말한다.
피아노 조율을 천직으로 삼다
그가 피아노 조율을 배운 것은 미국 이민을 결심한 후 생계수단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삼익악기에서 1년 동안 정식으로 조율사 훈련을 받았다. 이어 조율사의 경험을 쌓기 위해 낙원상가에 취직했다, 그 후 충무로 피아노사 영업부에서 조율사로 일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려고 피아노 세일즈도 겸했다. 피아노를 팔고자 서울 곳곳을 걸어 다녔다.
그로인해 그동안 몰랐던 서울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고 성격도 50% 정도 바꾸는 성과를 얻었다. 그런 변화 속에 성수동에서 피아노 대리점을 직접 운영했다. 그 후 누님이 사는 버지니아 비치로 이민을 와서는 그 곳에서 3개월 정도 미국 피아노 회사에서 조율사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이주했다. 플러싱으로 온 그는 동양식품점에서 1개월 정도 일하다 맨하탄 미국피아노회사에 취직한다.
그 곳에서 10년 동안 조율사로 일을 하며 경험을 축적했다. 하루 3건, 일 년에 1,000건 정도 피아노를 조율한 것이다. 그러다가 1995년 미국 피아노회사가 문을 닫게 돼, 퀸즈 블러바드 40가에 ‘박스 피아노’ 가게를 직접 차리게 됐다. 형이 운영하던 잡화가게가 어려워지자 ‘피아노 가게’로 변경한 것이다.
그 곳에서 2-3년 정도 피아노 위주의 판매와 조율을 하다가 플러싱으로 가게를 옮겼다. 그 후 20년 동안 꾸준하게 박스 피아노 가게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오는 11월부터는 피아노 조율과 수리 서비스만 할 계획이다.
그는 “미국 이민을 위해 피아노 조율을 배웠지만 성격과 적성에 맞아 그동안 꾸준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살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외국 전문음악인들도 인정하는 한인사회 최고의 피아노 조율사라는 자긍심을 갖게 됐다. 이제 피아노 조율은 나의 천직이다”고 말한다.
조율에 대한 잘못된 인식
그에게 피아노 조율을 맡기는 고객 중 70-80%는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이다. 이유는 실력과 신뢰다. 전문음악인들도 인정할 정도의 기술이 좋아 한 번 찾은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되는 것이다. 정직하고 시간을 준수하며 조율에 최선을 다하니 신뢰가 쌓이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의 고객 가운데 60%는 외국인으로 한인보다도 많다. 이는 조율에 대한 인식차이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한인들 중에는 아직도 ‘싸게 해 주는 것이 잘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율에 대해서도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 피아노의 관리 상태를 설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얘기해 주면 ‘이 사람이 속여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구나.’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지만 외국인들은 피아노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면 비용에 상관없이 믿고 맡기는 편이라고.
그는 절대로 숙련되지 않은 저렴한 비용의 기술자들과는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을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한인사회 조율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기술에 대한 자심감이 있고 최고의 조율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덕분이다.
그는 ‘한인들은 피아노가 문제가 있을 때만 찾아온다. 이는 암이 걸린 환자가 병원에 늦게 찾아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강을 위해선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듯이 피아노 조율도 6개월마다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1년 이상 하지 않으면 피아노 상태가 심각해 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치 있는 땀만큼의 이익
그는 한인교회를 비롯해 한인사회가 악기를 구입하는데 95%가 돈 낭비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가격대비 품질은 한국피아노가 최고인데도 불구하고 외국인들과 달리 한인들은 무조건 비싼 것만 고집하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그가 바가지와 낭비 방지 차원에서 그동안 피아노를 비롯해 악기를 저렴하게 판매한 것도 그런 이유다.
또한 KCS 봉사센터에서 6개월 동안 운동봉사를 한 것처럼 앞으로는 더 더욱 한인들의 건강지킴이로서 운동봉사에도 전념할 계획이다. 이는 수술을 생각해야 할 정도의 중증 손님이 꾸준한 운동으로 한 달 만에 80% 좋아진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인들도 ‘shape up NYC’ 웹사이트를 이용하여 뉴욕시 많은 곳에서 무료로 운동, 춤 연습을 하면서 건강을 지키길 바라는 마음이며 이를 돕는 데 적극 나서려고 한다. 이는 그의 변함없는 삶의 철학을 ‘서로 돕고 서로 믿는 한인사회’, ‘가치 있는 땀만큼의 이익’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행복은 작던 크던 계획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며 그림을 배우다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을 인생이라 생각한다. 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바르게 살다 가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누님의 도움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그에게 한국에 홀로 남은 여동생은 늘 미안하고 인생에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즐거웠다. 더불어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는 그의 고객들은 무척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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