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어보니 22년 간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8년 가까이 정말 좋은 직장들에서 풀타임으로 연구를 했다(어린 아이 둘을 가진 워킹맘으로의 어려운 점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써 볼 예정이다). 다니던 회사는 제약 분야에서 아주 큰, 베네핏도 좋은 회사였고, 보스는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드는 약이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직접 쓰인다는 자부심이 컸다.
둘째를 낳고 출산 휴가후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을 잃는 슬픈 일이 일어났다.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엄마로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나중에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한번도 쉬지 않고 앞만 향해 가던 나의 삶. 멈춘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두려웠다.
나는 과학자로서도, 엄마로서도 백 퍼센트 다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가지도 잘 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1년이 넘도록 마음은 잡히지 않았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개학 전 하루만 맡기기로 했던 중국인 방과후 학교 덕분에 아주 쉽게 답을 얻었다.
회사에서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한 나에게, 선생님이 “어? 잠깐 기다려- 네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금방 전화해줄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단 7분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 아이의 위치가 확인이 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나의 마음은 벌써 지옥을 수십번 왔다갔다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쩌면 나는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회사를 그만둘 결정을 내릴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재미있던 연구를,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의 길을 선택한 지 이제 막 5개월이 조금 넘었다. 나는 정말 놓치기 싫은 두마리 토끼 중, 나중에 돌아봤을 때 더 후회가 클 토끼를 먼저 잡은 것이다. 아이들과 지내는 나의 이 소소한 일상은 외부의 자극이 없는 한 참 평화롭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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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옥씨는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에서 학, 석, 박사를 마치고 하버드의대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Biogen Idec과 Genentech에서 치료용 단백질 생산 연구를 하다가 최근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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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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