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춘식 “내가 안 그렸다”…중구난방식 주장 난무
지난해 10월 천경자 화백의 별세가 확인된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진품이냐, 위작이냐를 두고 주변인 또는 관계자들의 주장이 계속되며 의문이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다.
이번에는 '미인도'를 과거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해 온 권춘식(69) 씨가 입장을 번복했다.
천 화백의 유족은 생전에 천 화백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며 이를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한 상태다.
◇ "그렸다" → "안 그렸다" 입장 번복
권 씨는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978년 위작 의뢰자에게 3점을 그려줬는데,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 스스로 미인도와 착각해서 말한 것 같다"며 "(미인도는) 내가 그린 게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수사기법이 회유하면서 여죄를 추궁하지 않나"라며 "얘기하면 사건을 감해 준다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국립현대미술관 것(미인도)도 내가 한 걸로 뭉뚱그려 말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천 화백 별세 이후 방송 인터뷰에도 나와 위조를 주장했던 그는 "최근 관련 사건을 다룬 또 다른 방송 취재를 접하다 보니 미인도의 크기가 매우 작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림이 낯설었고 그렇게 작은 그림을 그린 기억이 없다"고 재차 주장했다.
권 씨는 "내가 위작 전문가로 나오니까 기분이 안 좋았고 부담이 됐다"며 "논란에 시달렸는데 이제 그만 떠나고(벗어나고) 싶다"고 밝혔다.
천 화백의 유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문제를 만들고 혼선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천 선생에게도 어쨌든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권 씨의 입장 번복에 대해 일부에선 놀라워하는 한편 그의 주장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을 제기한다.
권 씨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 주장을 번복한 것에 책임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져야겠지"라면서도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대답했다.
권 씨 스스로 미인도의 위작 사실을 부인함에 따라 지난해 10월 천 화백 사망 이후 다시 가열된 미인도 파문은 또 하나의 논란을 더하게 됐다.
권 씨 수사를 담당했던 최순용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공개 강연에서 "최소한 내 개인 생각은 그때 권 씨의 태도나 진술, 그 사람의 실력으로 봐선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며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권 씨의 입장 번복으로 권 씨는 물론 당시 검찰 수사의 신뢰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통화에서 "당시 권 씨는 자진해서 그 얘기를 꺼냈고 천 화백의 미인도는 수사 대상도 아니었다"며 "또한 그런 얘기를 검찰에 했다고 해서 감형 사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 천 화백 별세 후 이어지는 논란들
1924년생인 천경자 화백의 별세 사실이 확인된 것은 지난해 10월22일이었다.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이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천 화백의 사위인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기자 간담회에서 천 화백 생전에 확인 결과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며 '미인도'를 위작으로 규정했다.
반면 11월에는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미인도는 최소한 위작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정 전 실장은 "1979년 10·26 사태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미술품이 발견됐다"며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을 그린 이 그림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로 넘어가 국가로 환수됐고 절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고 말했다.
이에 천 화백의 유족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정 씨의 발언이 천 화백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며 "차후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린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메릴랜드주 몽고메리대 교수는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정식 소송을 준비하다 보니 유족으로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친생자 소송을 내게 됐다"며 "자식된 도리로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싶다"고 밝혔다.
천 화백은 첫 남편과 사이에서 1남1녀를 낳고 두 번째 남편인 김남중(별세)씨를 만나 정희 씨와 종우씨를 낳았다고 자서전에 쓴 바 있다.
김 교수 부부 측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위작임을 시인하고 사죄하지 않으면 "사자 명예훼손과 저작권 위반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고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양측의 주장이 이어져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며 "미술계의 다른 중요한 사안이 파묻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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