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처럼 큰 복도 없는 것 같다. 살펴보면 이웃이나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개인 개인으로 보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과 다 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격이 다르고, 관심이나 취미가 다르고,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나 종교가 다를 경우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쉬운 일도 아니다.
미국에 산 것이 햇수로 따져보니 39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는 친구를 세어보면 열 손가락 안팎이다. 이웃과 교회에서 만났거나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친구 몇, 오랜 직장 생활에서 사귀어온 동료 몇이 전부다. 만나면 이런 저런 일 못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에 같은 생각이나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나 신앙에 대한 입장이 보수와 진보로 서로 다르고 취미나 성격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친구 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서로를 친구로 묶어주는 공통점인 것 같다.
한문에 善(선)이라는 글자는 우선 “착하다”는 뜻이 있다. ‘좋다, 친하다, 길하다, 행복 하다, 상서롭다, 옳게 하다, 바르게 하다’는 뜻도 있는데 모두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 혹은 행위를 가리키는 글자로 쓰이고 있다.
적은 수의 친구지만 善(선)한 친구와 같이 살아가는 행복은 참으로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쁜 직장생활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이웃과 우리의 2세, 3세 교육을 위해 100리 길 마다않고 놀랍게 활동하는 친구를 보며, 고집스럽게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학생들을 항상 웃음으로 대하는 직장의 동료를 보며, 사람의 善(선)한 성품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요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찾아오는 학생 중에는 성적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버릇없어 보이는 학생을 친 자식을 대하듯 따뜻하고 편하게 대하는 성품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친구의 모습들은 나처럼 참을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놀라움이다. 이런 놀라움을 발견하는 행복이 나의 이민생활과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신선한 활력소라 생각 한다.
공자께서 쓰셨다는 大學(대학)이라는 책의 첫 머리가 생각난다.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고, 사람들과 하나 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에 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있다’는 뜻의 在(재)가 반복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밝은 덕을 밝게 하는 일에 함께 있다. 사람들과 하나 됨 속에 함께 있다.
함께 있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단지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머문다는 뜻 보다는 능동적으로 함께해서 무엇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배우고 학문하는 사람의 길은 마침내 지극한 善(선)에 이르러 그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의 대학교육이 학생의 성품과 인격을 완성하는 큰 배움의 길(大學之道)을 가르치기보다는 직업을 위한 직능을 가르치는 곳으로 변해버린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도 타고난 선한 성품을 지극한 善(선)에 이르도록 수양하고 그 지극한 선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는 동료 교수들의 모습이 나를 감격하게 한다. 이런 지극한 善(선) 속에 함께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또 같이 인생길을 걸어가는 즐거움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옳고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일 것 이다.
밤이 깊다. 또 하루가 지나가고 새로운 아침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새 아침에, 새날에 다시 좋은 친구“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을 만날 희망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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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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