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의 20%인 커미션은 기본
▶ 이동·숙식·홍보비 등 줄줄이
■ 500달러 계약 촬영… 손에 쥔 건 단돈 15달러
모델은 시간소모가 많고 부담스러우며 경쟁이 심한 전문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어마어마하게 돈이 든다는 점이다. 다른 근로자들과 달리 이들은 수입의 상당액을 눈앞에서 날려 보낸다. 보통 소득의 3분의 1이나 절반 이상이 소리 소문 없이 어디론가 증발한다. 아예 한 푼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 한 남성 모델이 CNN머니와 보낸 입출금 내역서를 훑어보면 대충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모델은 500달러를 받기로 하고 카탈로그 촬영에 응했으나 그에게 우송된 수표에 찍힌 액수는 15달러였다. 다른 여성 모델은 6년간 7만 4,000달러의 소득을 올렸지만 실제로 손에 쥔 돈은 3만 달러를 밑돌았다.
모델은 소속 에이전시의 종업원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저임금, 오버타임, 점심시간 등 일반 직장인들이 누리는 특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물론 주 단위, 혹은 격주 단위로 또박또박 페이체크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독립계약직인 모델은 소속 에이전시에 수입의 20% 이상을 커미션으로 지급해야 하고 비즈니스 경비도 자비로 처리해야 한다. 비즈니스 경비에는 행사장소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항공료와 교통비, 단체투숙 비용과 판촉 자료비 등이 포함된다. 개인 판촉자료는 웹사이트, 얼굴사진과 포트폴리오 등 클라이언트로부터 일거리를 얻어내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모델들에게 일자리를 중개해주는 에이전시는 단순한 취업알선소가 아닌 매니지먼트사를 자처한다. 이들은 최근 CNN머니의 특별기획 시리즈를 통해 “모델을 키우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본인들도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의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CNN머니와의 인터뷰에 응한 수십명의 모델들은 “호된 수수료와 경비 때문에 도무지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에이전시들은 그들이 관리하는 모델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20%를 커미션으로 원천징수할 뿐 아니라 모델을 고용한 클라이언트에게도 비슷한 액수를 청구한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로부터 5,000달러짜리 일거리를 따낸 에이전시는 수수료로 보통 2,000달러를 챙긴다. 일감을 맡은 모델로부터 1,000달러, 모델을 고용한 클라이언트로부터 1,000달러의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명목의 비용을 제한 후 모델이 실제로 손에 쥐는 수입보다 많은 액수다.
어떤 모델은 3만 달러짜리 ‘월척’을 낚아챘지만 20%의 커미션과 세금을 제하고 난 실소득은 6,475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반 경비를 제하고난 수입은 참혹할 지경이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모델들은 단발성 소득에 의존해 다음 일감이 생길 때까지 수개월을 지내야한다. 한 예로 1만달러의 단발 소득을 올린 한 여성 모델은 커미션과 세금, 경비를 제하고 남은 4,000달러로 3개월을 버텨야했다.
이처럼 가혹한 경비와 관련, 모델들이 낸 집단소송의 원고 측 변호인들은 “패션의 본고장인 뉴욕의 일부 모델 에이전시들이 취업알선소가 아닌 매니지먼트사로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취업알선소의 수수료를 제한하는 주법을 피하기 위해 매니지먼트사 시늉을 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에이전시들은 모델들에게 단지 일감을 찾아주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10년 전에도 커미션을 둘러싸고 모델들이 에이전시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에이전시들은 원고 측에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법정 밖 합의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와 각종 경비 처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다짐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20% 커미션은아직도 ‘대세’다. 커미션 협상은 거액의 사례비를 받는 소수의 ‘톱 모델’에게만 허용되는 특전이다.
커미션보다 모델들을 더 지치고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각종 경비다. 특히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짜 모델은 스타트-업 경비로 지레 주눅이 든다.
카리비안 모델 경연대회에서 ‘트럼프 모델 매니지먼트’ 관계자의 눈에 들어 미국으로 오게 된 알렉시아 팔머가 좋은 본보기다.
매니지먼트사를 제소한 팔머가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재정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온 후 3년간 각종 경비로 1만 2,000달러를 지출했다.
지출내역을 살펴보면 카메라 테스트비용 2,000달러, 워킹 레슨 1회당 75달러, 에이전시가 추천한 피부과 전문의의 진료비 200달러, 개인 판촉비디오 250달러 등이다. 여기에 보태 쇼케이스 비용 900달러가 추가됐다.
그 뿐 아니다. 모델의 포트폴리오를 잠재적 클라이언트에게 보내는 운송비용으로 100달러 이상이 나갔고 교통비 400달러와 알쏭달쏭한 행정수수료로 4,000달러를 떼였다.
가불에 해당하는 선금도 피할 수 없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일감을 기다리는 동안 당장 먹고 살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5% 정도의 이자를 물기로 하고 에이전시로부터 선금을 받아야 했다.
커미션과 세금에 각종 경비와 가불금까지 제하고 나니 3년간 활동하면서 실제 손에 쥔 소득은 5,000달러도 안됐다. 첫 1년간은 소득보다 에이전시에 진 빚이 훨씬 많았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일감으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보니 계속 가불에 의존해야 했고, 결국 불어난 선금에 발목이 잡혀 꼼짝없이 에이전시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처음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올 때 트럼프 매니지먼트 에이전시는 연 7만 5,000달러의 수입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역시 ‘빈말’이었다.
모델이 성공궤도에 진입했다 해서 각종 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과밀 합숙소 입주비에 소속 에이전시 집기와 사무용품까지 입금된 모델료에서 일방적으로 제한다.
개인 웹사이트 수수료로 연 수백달러를 내야하고 얼굴사진이 들어간 장당 1달러짜리 명함을 한 번에 수백장씩 박아야 한다. 에이전시는 여기에 들어가는 돈을 미리 대납한 후 모델들의 수입이 들어올 때마다 사전상의 없이 공제해 버린다. 그러다보니 무슨 명목으로 어디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당사자인 모델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본인에게 전혀 알리지도 않은 채 에이전시가 클라이언트에게 모델 명의로 명절선물을 보내는 ‘관행’도 문제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는 대금은 모델료에서 빼간다. 지출명세서를 주기는 하지만 ‘WRITTEN OFF REVENUE’ ‘APLD WEST ACCT.‘ 등 뜻모를 용어들로 채워져 있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델들은 매니지먼트사의 횡포에 대부분 입을 다문다. 정면으로 항의라도 했다간 미운털이 박혀 커리어가 끝장날 수 있다. 에이전시 측이 클라이언트와 연결을 시켜주지 않으면 배겨내기 힘들다. 에이전시의 ‘갑질’에 영원한 ‘을’의 입장인 모델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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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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