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주 조종사 적발 잇달아
▶ 택시라면 “내려주세요”라도 할 수 있지만…

페닉스의 스카이 하버 공항을 이륙한 여객기가 달을 배경삼아 날아가고 있다. 미국의 여객기 조종사들은 매년 무작위 알코올 테스트를 받는다. 여기서 양성반응을 받은 파일럿도 재활절차를 거쳐 소정의 심사를 통과하면 비행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
몇 개월 간격으로 술 취한 민간여객기 조종사에 관한 뉴스가 들려온다. 지구촌의 어느 공항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의심되는 조종사가 이륙직전 적발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여행객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들조차 겁을 집어먹고 항공여행을 꺼리게 된다.‘음주 파일럿’ 사건은 언제 어디서 터지건 늘 글로벌 뉴스로 취급된다. 하지만 수많은 승객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한 민간 여객기 파일럿의 위험천만한 만취조종은 극히 드문 예외적 사건에 속한다.
전 세계의 1일 항공편 수는 총 9만 편으로 이들이 실어 나르는 여행객 수는 평균 800만 명을 헤아린다. 매일 800만 명의 탑승자를 태운 9만 대의 여객기가 운항된다는 얘기다. 물론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 가운데 절대다수는 비행에 적합한 “깨어 있는 상태”다.
US 에어웨이즈의 파일럿 출신으로 은퇴 후 컨설팅사인 ‘세이프티 오퍼레이팅 시스템스’ 최고경영자로 활동하는 존 콕스는 “파일럿만큼 철저히 모니터를 당하는 전문직종사자도 흔치 않다”며 “조종사 스스로도 비행에 적합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사들은 적어도 음주에 관한 한 상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사고는 간간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가장 최근에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조종사 2명이 141명을 태운 스코틀랜드발 미국행 항공편의 조종석에 앉아 이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포됐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음주혐의로 적발된 조종사들이 더 이상 조종간을 잡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비행직전 음주사실이 들통 난 파일럿들은 정직처분을 받는다. 조종사로서 영구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직무가 정지될 뿐이다.
실제로 음주비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많은 조종사들이 현재 하늘 길 길라잡이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연방항공청(FAA)은 의학적 평가와 5년간의 관찰기간을 거쳐 재활에 성공한 ‘음주 파일럿’의 조종석 복귀를 허용한다.
1970년대에 파일럿 노조의 적극적지지 아래 마련된 FAA의 프로그램에 따라 지난 40여년간 재활과정을 밟은 조종사 5,300명이 비행면허를 재취득했다. 연간 100명 이상이 복권된 셈이다.
FAA 규정에 따르면 조종사는 혈중알코올 농도가 0.04% 이상인 경우 비행이 금지된다. 영국의 기준은 이보다 엄격한 0.02%다.
이에 비해 미국의 자동차 운전자는 혈중알코올 농도가 0.08%이상이면 음주운전으로 체포된다. 법정허용한계가 파일럿에 비해 2배나 높다.
FAA규정에 의해 조종사는 술을 마신 후 최소한 8시간이 지나야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 지난해 비행을 앞둔 미국 조종사 1만 2,48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실시된 알코올 테스트에서 단 10명만이 허용 한계치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무작위로 알코올 조사를 실시하며 조종사가 술에 취한 것으로 의심될 때에 한해 개별검사를 한다. 파일럿들은 알코올 이외에 무작위로 실시되는 마약검사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도의 조종사와 승무원은 이륙 전에 반드시 알코올 측정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라밖으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항공편의 경우 단 한명의 예외도 허용되지 안 된다. 전수조사다.
국제선 조종사와 기내 스탭에 대한 전수조사가 의무화되어 있음에도 지난 한해 43명의 파일럿이 혈중알코올 즉정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인도의 연간 비행편수는 미국의 10분의 1 정도다.
항공여행자들은 음주조종에 비해 음주운전이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매년 미국의 고속도로에서는 약 1만 명이 음주운전 관련 사고로 사망한다. 교통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전체 인명피해의 3분의 1이 음주운전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객기 탑승자들은 심리적인 이유로 이런 통계치에서 위안을 찾지 못한다.
여객기는 거의 소리의 속도로 날아가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튜브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승객은 누가 조종간을 잡고 있는지 볼 수 없다. 자신이 타고 있는 택시의 운전기사가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면 승객은 언제든지 정차를 요구할 수 있다. 차를 세우고 내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여객기를 세울 수는 없다.
1970년대 이후 음주문제를 지닌 조종사들은 비밀이 보장되는 재활치료를 거쳐 조종석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조종사노조가 만든 HIMS 프로그램 덕분이다.
HIMS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조종사들은 FAA공인 의사로부터 의학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업무복귀 이후에도 수년에 걸쳐 매달 플라이트 매니저와 다른 조종사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출두해 면접심사를 거쳐야한다.
항공안전컨설팅업체 ‘어센드’의 디렉터인 폴 헤이스는 여객기사고에서 알코올이 원인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하지만 음주와 관련한 추락사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1977년 일본항공 DC-8 화물기가 앵커리지 공항을 이륙하던 중 추락해 조종사와 승무원 5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미국인 조종사는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9월 소련의 아에로플롯 여객기가 러시아의 한 공항에서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다가 추락해 탑승자 88명이 숨졌다. 만취상태의 조종사가 방향감각을 상실한데서 비롯된 사고였다.
미국에서도 2015년 뉴욕과 올란도를 정기적으로 오가던 제트블루 에어웨이즈의 파일럿이 두 차례 음주조정을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보다 앞서 알라스카항공의 조종사도 2014년 2번에 걸쳐 술을 마신 상태에서 오리건과 캘리포니아를 오간 사실이 드러나 기소됐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1990년 노스다코타의 파고발 미네아폴리스행 노스웨스트항공 조종사 3명의 비행전야 술잔치였다. 다음날 오전 6시 30분발 여객기의 조종을 맡은 이들 가운데 한명은 콜라와 함께 15잔의 독한 럼주를 들이켰으며 다른 2명은 최소한 피처 6개 분량의 맥주를 나눠마셨다. 이들 두 명은 밤 10시 30분까지, 다른 한 명은 11시 30분까지 술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조종한 여객기는 목적지에 무사히 착륙했지만 ‘술잔치 3인방’은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됐고 결국 실형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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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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