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12월. 가을의 끝자락이자 겨울의 초입이다. 나무에 매달려있는 잎보다는 떨어져서 쌓인 것이 더 많은 시절이다. 까까머리 학생시절, 이브 몽땅의 고엽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르몽의 시 한 구절을 읊조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기 낙엽 밟는 소리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 안에 산, 강, 계곡 그리고 폭포가 오밀조밀 모여 있고 게다가 유적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퍽 흥미로운 생활밀착형 나들이 장소, 바로 스캇런 자연보호구역(Scott’s Run Nature Preserve)이다.
낙엽 밟으며 걷다보니
징검다리 그리고 가을 폭포...
애난데일서 15분 거리
무엇보다도 멀지 않아서 좋다. “우리, 여기 갈까?”하고는 그 즉시 훌쩍 떠날 수 있는 거리.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의 경계에서 가까운 I-495의 44번 출구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 애난데일에서 10.5마일, 15분.
남쪽은 I-495와 연결되는 조지타운 파이크(Georgetown Pike, 193번 지방도로)에 닿아있고 북쪽은 포토맥 강에 접해있는 곳. 전부 7개의 트레일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무지개 트레일’이라고 부르는 곳. 각각의 트레일마다 나무에 칠해진 유도표지 색깔이 서로 다른데 그 색깔도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 지금은 낙엽이 지천이므로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속삭이는 소리가 가득한 트레일을 걸으면서 이효석 선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떠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해발 313피트에 2시간 거리
스캇런 자연보호구역 안에는 일곱 개의 트레일과 그 트레일들을 연결하는 트레일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의 선택이 가능하지만, 처음 간다면 가장 기본적인 코스라 할 수 있는 사각형 코스를 일단 한 바퀴 둘러본 후 나머지 코스를 추가로 가보기를 권유한다.
여기서 사각형 코스라 함은 다음과 같이 가는 것을 말한다. 서쪽의 큰 주차장을 출발해서 스캇런을 따라 북쪽으로 걷다가 그 길 끝에서 스캇런 폭포(Scott’s Run Fall)를 만난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포토맥 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가서는 스터블필드 폭포 전망대(Stubblefield Falls Overlook)에서 폭포와 포토맥 강을 내려다본다.
그런 후 전망대 뒤편의 산을 넘어 동쪽 작은 주차장(East Parking)으로 간다. 그런 후 오솔길을 따라 처음의 출발지인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이 모양이 대략 사각형이어서 사각형 코스라고 불러봤다. 전체 시간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고, 전체 코스 중에서 30m 정도만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평이한 코스이다.
이 자연보호구역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코스인데, 가장 낮은 곳이 해발 60피트(약 18m)이고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13피트(약 95m)이니까 그 차이가 253피트(약 77m). 그다지 험한 곳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징검다리
출발은 주차장 두 곳 중에서 조금 넓은 곳에서 하는데 지도상으로는 SN1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주차장 바로 옆에 개천이 흐르는데 이것이 스캇런(Scott’s Run)이다. 개천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나무에 표시된 파란색 유도표지를 보면서 걸어가면 그 끝에서 포토맥 강과 스캇런 폭포를 만난다.
이 길은 평탄하고 잘 다져져 있기 때문에 나이 많이 드신 어르신이나 아장아장 걷는 아주 어린 꼬마들도 갈 수 있는 대표적인 가족용 트레일이다. 나무가 울창한 야트막한 산과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개천을 끼고 걷기 때문에 경관도 좋다. 게다가 중간에 징검다리가 두 개나 있으니 어린이들의 인기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징검다리를 볼 때 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떠올리는데,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타야하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첫 번째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을 쳐다보면 11월에 엄지 손톱 보다 조금 더 큰 노란 꽃을 피우는 풍년화(Witch-hazel) 몇 그루를 만나는 행운을 맛볼 수 있다. 풍년화를 본 후 계속 걸어가서 조그마한 고개를 넘고 나서 포토맥 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기 스캇런 폭포(높이 30-foot)가 있다. 여름날에는 청춘들이 수영복으로 물놀이를 하는 곳이다.
강 따라 걷는 오솔길
스캇런 폭포 부근의 포토맥 강가에서 잠시 주변을 살펴본다. 왼쪽이 포토맥 강 상류 쪽인데, 보이지는 않지만 그 너머에 그레이트 폴스가 있다. 강 건너편은 메릴랜드 주인데 빌리 고트 트레일(Billy Goat Trail Section C)이 있는 곳. 그리고 하류 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I-495의 아메리칸 리전 메모리얼 브릿지(American Legion Memorial Bridge)가 보인다.
스캇런 폭포를 출발해서는 포토맥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길을 걷는다. 왼쪽에 있는 강을 바라보면서 가는 이 길은 평탄한 오솔길인데, 가끔 물새를 만나기도 한다. 나무에 표시된 유도표지는 여전히 파란색. 이 길 오른쪽에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을 만나게 되는데, 두꺼운 판의 모습인 바위가 세로로 비스듬히 세워져있다. 지각변동으로 인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이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강 건너편의 빌리 고트 트레일에서도 많이 만나게 된다.
강변을 따라 걷는 이 길의 끝에서 가파른 외길 30m 쯤 더 가면 스터블필드 폭포 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주차장에서 처음 출발한 곳에서 부터 이 폭포 전망대를 지나서 계속 이어지는 트레일이 전체 50마일에 이르는 포토맥 헤리티지 트레일(Potomac Heritage National Scenic Trail)의 일부.
스터블필드 폭포 전망대
스터블필드 폭포 전망대는 높은 바위 위에 있어서 스터블필드 폭포뿐만 아니라 포토맥 강의 많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나무가 무성해서 강의 많은 부분이 가려지지만 지금은 나뭇잎이 져서 시야가 확 터진 포토맥 강을 볼 수 있다. 포토맥 강 위를 나는 맹금류를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망원경이 있다면 가져가시기를.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방지하고 가자. 스터블필드 폭포는 그 이름에 ‘falls’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여기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폭포’를 직접 치환하면 곤란하다. 현장에 가보면 ‘영어 falls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강가에 가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전망대 오른쪽에 있는 경사가 심한 샛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강의 유량이 많지 않다면 거기에 있는 인공축조물을 따라 강의 안쪽 까지 접근해서 폭포 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주의할 것은 강물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싶으면 그 즉시 돌아서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공축조물에 닿기 전에 있는 강변의 널따란 바위에 누군가가 글자를 새겨두었는데 뭐라고 새겼는지는 직접 가본 사람만 알 수 있게끔 여기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가본 사람만을 위한 일종의 보물찾기.
자연보호운동의 현장
앞에서 ‘유적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했으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 역사 공부 두 자락.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이 지역은 나코츠탄크(Nacothchtank) 인디언 부족과 관련이 있다. 이 지역은 그들의 블루릿지 마운틴과 체사픽만 사이의 교역 이동 경로상에 있는데, 스캇런 부근에 그들이 야영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워싱턴 DC와 메릴랜드주에 걸쳐 흐르는 애나코스티아(Anacostia)강의 애나코스티아가 이 부족 이름의 영어식 표현.
다음은 자연보호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에 관한 이야기. 주차장(SN1)을 떠나 스캇런 폭포로 가다가 만나는 작은 언덕 오른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 하나가 있다. 거기가 버얼링 가옥 유적지(Burling Cabin Site)로 이어지는 초록색 트레일(Burling Cabin Trail)의 입구이다. 그 나무계단을 지나서 약 30도 정도의 경사를 따라 3-4분 정도 올라가면 왼쪽에 벽난로 굴뚝만 남은 유적지가 하나 있는데, 변호사 에드워드 버얼링(Edward Berling)의 주말 별장이 있던 곳이다. 지도에 SN7으로 표시된 곳이다. 변호사인 그는 1920년에 이 지역의 336에이커의 땅을 사서 여기에 주말 휴식용 별장을 지었다.
1960대 후반에 그가 사망하고 나서 이 땅은 주택개발업자가 매입했는데 그 때 자연보호운동가, 지역 단체, 고등학생들이 택지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서 업자로부터 이 지역을 매입하였다. 결국 그때의 택지개발 반대시위의 결과로 지금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그 옛날의 자연보호를 위한 시민운동의 결과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메트로 지역에 우리 한인 환경단체인 초록물결(Green Wave)이 있다는 게 뿌듯하다.
워싱턴포스트의 찬사
낙엽을 밟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곳.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곳. 개천에 비친 나무와 하늘을 보며 마음을 맑게 닦는 곳. 이곳에 대해 콜먼 매카시(Colman McCarthy)가 1969년 워싱턴포스트지에 남긴 찬사가 안내판 한 곳에 적혀있다.
A prized retreat for seekers of nature, weekend Thoreaus…
and others who, for the soul or the lung, still pursue pure land, air, and space.
(주: 소로Henry D. Thoreaus는 19세기에 2년여 동안 숲속에서 순수 자연의 단출한 생활을 실천한 미국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
방문 꿀팁
●입장료: 없음. / 페어팩스 공원국 관리 / 별도 초소 없음.
●개장 및 폐장: 연중무휴이고 인터넷에는 일출 30분전, 일몰 30분 후라고 되어있으나 현장에서는 해지면 폐쇄된다고 게시되어 있음.
●주소: 7400 Georgetown Pike, McLean, VA 22102
●주차장:
- 주차장은 두 곳, 주소로 찾아가는 것 보다는 좌표로 찾아가는 것이 더 좋음.
- 스윙크스 밀 로드(Swinks Mill Rd)에 가까운 주차장이 더 넓고 40-50대 정도 주차할 수 있음. 좌표는 북위 38.958942(N), 서경 -77.205121(W).
- I-495에 10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작은 주차장(East Parking)은 10여대가 주차할 수 있음. 좌표는 북위 38.956347(N), 서경 -77.198415(W).
●쓰레기통: 주차장에만 쓰레기통이 있음.
●화장실, 매점: 없음.
●애완견: 끈에 묶여있으면 대동할 수 있음. 퍽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과 함께 옴.
●금지되는 행위: 자전거 타기, 오토바이 타기, 승마, 캠핑, 음주, 수영, 목욕, 물속에 들어가기, 사냥, 식물 또는 광물 채취.
●사슴사냥 시즌 주의: 2016. 9. 10~2017. 2. 25(단, 일요일은 사냥 없음). 지정된 트레일을 벗어나면 위험. 개를 풀어놓아도 위험.
●기타 주의 사항
- 체온유지에 각별히 주의, 머리 보온 철저, 장갑 준비.
- 낙엽이 쌓인 길은 낙엽 밑의 깊이를 알 수 없으므로 발 내디딜 때 주의가 필요.
<
김성식 (VA,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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