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연구결과 발표로 또다른 논쟁 예고, 시술 거부 당한 임산부 우울증 등 심리적 증후군 많아, 낙태시기는 큰 영향 없어 반대론자 기존 통설 뒤집어
▶ 정신적 영향 이유로 금지 법률제정 근거 사실상 없어, “임신중절 막는 것보다 선택존중이 바람직”결론

최근 미주리주 콜럼비아의 한 낙태 시술병원 앞에서 반 낙태주의자들이 사인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 낙태(인공 임신중절)에 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슈가 되는 가장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주 거론해왔던 이유 중 하나가 사실은 거의 근거 없는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또 다른 논쟁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여성이 낙태를 하면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주장이있어왔고, 그 때문에 몇몇 주에서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카운슬링 받을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철저하게 조사한 새로운 연구에서는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미전역에서 낙태를 원했던 여성 1,000명을 5년 동안 조사했는데 그 결과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이 받지 못한 여성보다 더 많은 우울증과 불안, 낮은 자존감 혹은 인생에 대한 불만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연구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내달 대법관에 낙태반대주의자를 임명할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려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낙태 시술에 대한 수많은 규제와 제한이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 때문에 가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자마(JAMA) 정신의학지에 실린 이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증후군을 겪은 여성들은 낙태한 여성들이 아니라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으나 임신기간이 낙태가능 시한을 넘겨 시술을 거절당한 여성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의 스트레스는 길지 않았는데, 다른 곳에 가서 중절 수술을 받았거나 아니면 아기를 분만했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케이티 왓슨은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은 거의 모든 여성들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면 안정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 연구가 말해주는 것은 사람들의 놀라운 회복력과 주어진 상황에 대한 최선의 적응력, 그리고 그것의 일상성”이라고 강조했다.
‘거부당한 자의 연구’(Turnaway Study)라고 불리는 이 조사는 UC샌프란시스코의 생식건강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것으로, 과거 연구들의 방법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연구들은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과 출산을 택한 여성들을 비교한 것이었는데 전문가들은 두 그룹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또한 과거의 연구들은 대상 여성들이 전에 심리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경우 낙태 이후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굉장히 큰 데도 말이다.
이번 연구는 대상자의 정신건강 병력을 확인했고, 낙태가능 시한에 가깝거나 넘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처음부터 낙태를 원한 여성들만을 비교했다. 낙태가능 시한은 주마다 다르고, 또한 병원의 결정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연구에 포함된 21개주의 30개 클리닉의 시한은 임신 10주부터 임신 중기인 약 25주까지 폭이 넓었다.
질병통제 및 예방센터의 생식건강 전 디렉터이며 에모리 대학 글로벌 건강 및 전염병학 교수인 로저 로채트는 이 연구가 주어진 주제에서 최선의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고 말하고 이것이 주법과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단히 강력한 연구결과”라고 말한 닥터 로채트는 “앞으로도 많은 주들이 낙태 시술이 미치는 정신적 영향을 근거로 이를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옹호 단체의 교육과 연구 디렉터인 랜덜 K. 오배넌은 “낙태 시술을 거부당한 여자들이 즉각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좌절은 놀라운 반응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그러나 이 연구는 그런 감정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낙태 거부가 완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에 대해 비판적인 닥터 오배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5년은 충분히 오랜 시간으로 느껴질 테지만 어떤 여성들은 낙태하고 나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문제를 갖게 된다”고 말하고 “이 연구는 10년이 지난 후 그런 경험을 하는 여성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불안, 우울, 자살충동에 빠지는 등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그 후에 겪게 될 지도 모르는 감정적 심리적 영향에 대해 상담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주는 22개주이고, 그중 9개주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만 집중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고 낙태옹호 연구기관(Guttmacher Institute)은 전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낙태시술은 절대다수가 임신 초기에 시행되지만 이 연구는 그 이후에 낙태를 원하는 수백명의 여성도 포함하고 있다. 273명은 임신초기에 시술받았고, 452명은 낙태가능 시한 2주 인근에 시술받았고, 231명은 가능시한을 3주 넘겨서 거부당했다. 거부당한 231명 가운데 161명은 아기를 출산했고, 70명은 유산했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시술받았다.
이 연구는 낙태 시술 받은 여성을 1주일 후부터 심리적인 상태를 조사했으며 그후 5년 동안 매 6개월마다 다시 조사했다. 연구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M. 안토니아 빅스는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증과 불안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연구 결과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낙태를 거부당한 여성들이 낙태한 여성들보다 더 많은 걱정과 자존감의 하락, 삶의 만족도가 저하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한 그는 “그러나 6개월에서 1년이 지나자 그들의 상태는 낙태한 여성과 같아졌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임신 초기에 낙태한 여성이나 그 후에 중절수술을 받은 사람의 심리 상태가 같다는 것이었다. 닥터 빅스는 “사람들은 흔히 임신 초기에 중절을 택한 사람보다 나중에 시술받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연구결과 그런 사실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닥터 빅스는 “이 연구결과는 낙태를 못하게 막는 것보다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주는 것이 여성들의 정신 건강을 더 보호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지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모든 그룹의 여성들이 우울증을 겪는 문제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었고, 낙태를 거부당한 여성들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부정적인 정신 건강 문제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닥터 빅스는 덧붙였다.

최근 연구 결과 낙태한 여성들보다 거부당한 여성들이 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하이오 주의 낙태 시술병원 데스크. <사진 Ty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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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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