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사진으로 본 현대 수녀들의 일상
▶ 18년 전 30명서 5명만 남아, 대부분 은퇴·자원봉사자, 간호학교의 환자들 돌봐“, 병 아닌 사람을 치료하죠, 은둔자라는 생각은 잘못”

수녀들은 새벽 5시부터 하루 5회의 기도를 중심으로 일상을 지켜나간다<사진 Fabian Fiechter>
현대의 수도사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특히 기독교 신앙이 시작된 곳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교회의 전통이 가장 쇠락한 유럽에서 수녀들의 명맥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진 다큐 프로젝트가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독일의 뢰라흐 지방에 있는 성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실시됐다.
파비안 피히터(36)가 스위스 국경에서 멀지 않은 뢰라흐 지방에 있는 간호학교를 찾은 것은 2016년 성탄 즈음이었다. 오래전 이곳에서 간호사 공부를 했던 파비안은 이번에는 로마 가톨릭 수녀들의 일상을 기록사진으로 담기 위해 방문했다.
소그룹의 노인 수녀들은 그를 따뜻하게 환영했다. 파비안과 수녀들 모두 이 간호학교에서 공부한 동창들이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떠났지만 수녀들은 아직도 뢰라흐의 성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살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 학생으로 그곳에 갔을 때부터 수녀들의 일상의 리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는 30명쯤 되는 수녀들이 부속 수녀원에서 생활하면서 병원의 여러 병동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5명의 수녀만이 남아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녀가 되려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었고, 헬스케어 시스템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5명의 나이 든 수녀들만이 있는 곳. 하지만 피히터가 이곳에 머물며 기록한 사진들은 전혀 외롭거나 슬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하고 다정하며 때로는 유머가 넘치는 사진들이 많다. 수녀들의 생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갈수록 축소되는 위상과 갖가지 도전에도 불구하고 수녀들이 하루의 일상을 통해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도 일해봤습니다. 수녀가 전혀 없는 거대한 대학병원에서도요. 그러나 이 병원에는 이곳만의 특별한 기운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수녀님들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어요. 기관으로서의 병원이 아니란 말입니다. 수녀님들은 마치 가족처럼 언제나 함께 있어요. 거기서 살고, 언제나 그 주변에 있답니다”그들의 간호는 전인적인 것이라고 말한 피히터는 “수녀님들은 환자를 보살피는 일에 있어서 아주 높은 기준을 갖고 있어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려는 것이죠. 의학적인 질병과 함께 심리적인 상황까지 돌봄으로써 모든 요인을 함께 치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라고 강조했다.피히터는 그 자신이 이 병원에서 태어났고, 아직도 부모가 뢰라흐에 살고 있어서 성엘리자베스 병원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병원은 100년도 더 전에 군인병원으로 세워졌으며, 스태프로 근무하는 수녀들의 숫자가 한 때는 100명도 넘었다. 간호학교가 세워진 것은 1964년, 피히터는 1998년에 입학했으나 나중에 포토저널리즘으로 전공을 바꿨고, 학교 숙제로 고향을 찍는 프로젝트에 초청돼 다시 병원을 방문한 것이다.
그는 수녀들이 일하는 모습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병동에서 환자들과 함께 있는 사진이 드문 이유다. 병원 자체도 몇 년 사이에 규모가 줄어들었다. 성인 환자들을 그 지역의 정부 운영 병원으로 가고, 성엘리자베스 병원은 소아과 위주로 바뀌었으며 직원들도 평신도들이 대부분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소수의 수녀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자원봉사하고 있는 사람들로, 매일의 일과 생활에서 특별한 기쁨을 찾고 있다. 어떤 수녀는 성당을 돌보고 관리하면서 환자 입원실에 필요한 물품을 채워 넣거나 외래 환자들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책임수녀 아네문다는 여러 가지 업무와 책임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한다.
“환자들과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챙기고 안내하기도 합니다. 죽을 병에 걸린 아이가 있으면 열심히 기도해주고 가족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지요”라고 설명한 피히터는 “병원과 환자 가족 누구든지 아네문다 수녀님에게 전화하고 부를 수 있답니다. 병원에 오지 않는 사람들도 말이죠. 수녀님은 매일 병원 주변을 걸어다니며 모든 병동을 살피고 직원과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알아보고 지원해줍니다”라고 말했다.그는 또 “수녀들이 세속을 떠나 은신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지적하고 오히려 수녀들은 타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현대 독일이 당면한 문제들, 난민 이슈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수녀님들은 더 이상 벽으로 담장을 쌓은 폐쇄적인 수녀원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소명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지요. 수녀님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과 정치를 비롯한 수많은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85세나 되는 사람이 정치문제를 빠삭하게 알고 있고, 사고방식도 그렇게 개방적이며 리버럴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답니다”수녀들의 생활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5회의 기도가 일상의 중심이다. 그러나 일하지 않을 때나 신앙생활에만 매진하지 않을 때는 친구들이나 가족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산보도 하며 때로는 거리에서 윈도우 샤핑도 즐긴다.
과거에는 나이 든 수녀들이 현역에서 은퇴하면 수녀원에 남아 이곳서 죽을 때까지 살곤 했다. 그러나 요즘 수녀들은 은퇴수녀 수십명이 살고 있는 노인 요양시설로 보내진다. 이곳 성엘리자베스 병원에 남아있는 5명의 수녀들이 은퇴하면 이 병원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 피히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죠. 마지막 수녀님이 소천하거나 떠나고 나면 병원은 폐쇄될 겁니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다큐 사진을 찍고 있는 거에요. 10년만 지나도 사람들은 이분들 세대와 생애를 잊어버릴테니, 내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은퇴수녀 요양소로 떠나는 로무알다 수녀(맨 오른쪽)와의 마지막 오찬에서 수녀들이 기도하고 있다.<사진 Fabian Fiechter>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수녀들. 왼쪽부터 노에미, 아네문다, 마가리타 수녀<사진 Fabian Fiechter>

마리아 크사베리아 수녀가 뢰라흐 시내에서 청바지 상점을 둘러보고 있다.<사진 Fabian Fiechter>
<
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