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 없이 더 위험한 것을 찾는 ‘리스크 중독자들’, 2만5천피트 상공서 작은 그물위로 자유낙하
▶ 열기구 타고 성층권까지 올라가 음속 다이빙 허공서 시속100마일 비행기 날개 위 착지도

지난 6월 미국의 스카이다이버가 루크 아이킨스가 낙하장비 없이 2만 5,000피트 상공에서 지상으로 자유낙하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2분간의 자유낙하를 거쳐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 외곽 ‘빅 스카이랜치’에 펼쳐진 대형 고안전그물 위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지난해 6월 미국의 한 스카이다이버가 낙하장비 없이 허공에서 지상으로 자유낙하를 시도했다. 누가보거나 무모한 자살행위였다. 루크 아이킨스(42)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타고 있던 경비행기에서 뛰어내린 후 공중유영을 거쳐 정확이 2분 뒤 영화촬영장으로 자주 쓰이는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 외곽 ‘빅 스카이랜치’에 펼쳐진 대형 안전그물의 한복판에 내리 꽃혔다. 죽음과 삶 사이의 유일한 가름막이었던 안전그물은 가로세로가 각각 100피트에 불과했다. 2만 5,000피트 상공에서 보면 그야말로 조그마한 헝겊조각에 불과했을 것이다. 통산 1만 8,000여회의 고공점프 기록을 지닌 아이킨스는 흔히 데어데블이라 불리는 ‘위험중독자’다. 그는 목숨을 내건 극한의 도전을 통해 희열을 느낀다.
아이킨스는 열두살 때 처음으로 고공점프의 맛을 보았다. 물론 당시는 조교와 함께 뛰어내리는 2인 1조의 탠덤 점프였다. 이어 4년 후 솔로 점프에 성공한 그는 매년 수백차례 경비행기를 타고 수천 피트 상공으로 날아올라간 뒤 홀홀단신으로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고참 스카이다이버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아내까지 무려 2,000여차례의 고공점프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가족은 워싱턴주 타코마 인근에서 스카이다이브 카포우신을 운영한다.
아이킨스는 미국낙하산협회 안전 및 교육 자문관이자 일반인과 스카이다이빙 교관을 가르칠 수 있는 인증된 인스트럭터다. 네이비실과 미군 정예부대원들의 스카이다이빙 훈련도 담당한다.
겁 없는 사내는 아이킨스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유명한 데어데블로는 모터사이클 스턴트 전문인 이블 크니블이 꼽힌다.
그는 세로로 길게 연결된 수 십대의 버스와 트럭을 오토바이를 탄 채 뛰어넘는 묘기로 주가를 올린 인물. 관중들의 박수갈채와 환호에서 삶의 동력을 찾던 크니블은 1968년 오토바이에 로켓 엔진을 달고 라스베이거스 명물 시저스 팰러스 카지노 분수대를 뛰어넘으며 데어데블 그룹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오토바이로 130피트를 도약해 분수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으나 착지에 실패해 1달 가까이 의식불명상태에 빠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도전은 극한을 향해 치달았다. 급기야 그는 1974년 9월 8일 유타 스네이키 리버 캐년에서 로켓파워를 장착한 모터사이클을 이용, 1마일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마주선 두 계곡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뛰는 죽음의 스턴트를 선보였다. 그가 탄 모터사이클은 추락했고, 그 역시 협곡 가운데로 떨어졌지만 비상용 낙하산 덕분에 중상을 입은 채 가까스로 살아났다.
그는 낙하산이 오작동해 조기에 펼쳐지는 바람에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호주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도 알아주는 데어데블이다.
그는 지난 2012년 10월 14일 캡슐형 헬륨 열기구를 이용해 성층권인 지상 24마일 높이까지 올라간 후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낙하했다. 말하자면 그는 인류최초의 초음속 우주스카이다이버인 셈이다.
바움카르트너는 우주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9분간 자유낙하를 한 후 뉴멕시코주 로스웰 인근 한 사막지대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당시 그를 지도한 사부이자 백업 점퍼가 바로 아이킨스였다.
죽음을 희롱하는 외줄타기 달인들 가운데에도 극한 리스크 중독자들이 적지 않다. 1974년 8월 6일, 뉴욕의 110층짜리 쌍둥이 신축건물인 트레이드 타워스의 양쪽 꼭대기를 와이어로 연결하는 작업이 은밀하게 진행됐다. 프랑스의 외줄타기 명인 필립페 페팃과 그의 조력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벌인 일이었다.
그 다음날 페팃은 110층 아래서 행인들이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외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걷고 춤추고, 광대짓을 해가며 45분을 보냈다.
그의 스턴트는 2008년 ‘Man on Wire’라는 다큐멘터리로 소개됐으며 2015년에는 ‘The Walk’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프랑스에 페팃이 있다면 독일엔 칼 왈렌다가 있다. 외줄타기 명문가의 가부장이었던 그는 그러나 1978년 3월 22일 푸에르코리코 샌환의 고층 호텔 타워 2곳을 와이어로 연결한 후 줄타기 묘기를 부리다 추락사했다.
그보다 훨씬 고난도의 줄타기를 숫하게 성공시켰던 왈렌다는 갑작기 불어닥친 돌풍에 균형을 잃고 와이어에서 떨어졌다. 당시 그의 나이 73세였다. 그의 증손자인 닉 왈렌다는 지난 2012년 나이아가라 폭포를, 그로부터 1년 후에는 그랜드 캐년의 협곡을 외줄을 타고 건너면서 퇴색한 ‘가문의 영광’을 되살렸다.
‘저승사자’와 한판 승부를 벌이다 패배한 데어데블은 목숨을 잃기 마련이다.
딘 포터(43)는 2015년 5월 16일 황혼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태프트 포인트에서 윙슈트를 입고 BASE 점프를 시도하다 추락사했다. 그와 동반 점핑에 나섰던 친구 그래햄 헌트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건물, 안테나, 교각, 절벽 등에서 뛰어내리는 베이스 점프는 스카이다이빙과 비슷하지만 낙하시 구조물 등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더 위험하다.
포터가 숨질 당시 요세미티에서는 베이스점프가 금지된 상태였지만 당국의 눈을 피해 많은 데어데블들이 목숨을 담보로 아찔한 놀이를 즐겼다.
미국의 전문 베이스점퍼인 조니 스트레인지는 17세 때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최연소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스위스 알프스의 루체른 인근에서 새로운 윙슈트를 선보이는 촬영을 하려다가 비행기가 절벽에 부딪혀 사망했다.
한편 프랑스의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지닌 알랭 로베르는 초고층 건물 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르는 ‘어번 클라이머’다. 그는 지난 2004년 성탄절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꺽다리 건물이었던 대만의 타이페이 101빌딩을 비와 강풍을 견뎌가며 4시간 동안 맨손으로 기어올랐다.
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어번 클라이밍도 허공중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는 묘기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폴 스타이너는 2010년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날아가는 글라이더 밖으로 나와 다른 비행기의 날개위로 점프했다. 무사히 착지한 그는 날개위에 서서 나란히 비행중인 첫 번째 비행기의 꼬리날개를 손으로 붙잡았다.
이 대담한 스턴트를 펼치던 스타이너는 실수로 인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당시 지상으로 무사히 내려오는데 사용할 낙하산을 매고 있었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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