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사절 넘어 ‘일본여성 롤모델’ 로 인기
▶ ■ 3년 임기 마치고 다음 주 귀국

퇴임을 앞두고 주일 미 대사관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캐롤라인 케네디 대사
손으로 쓴 그 편지는 단 세 문장으로 짤막했다. 그러나 그 편지가 자신에겐 끼친 영향은 대단히 깊었다고 ‘일하는 엄마들이 직면한 문제’에 관해 도의회에서 발언하는 도중 남성의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야유를 당했던 여성의원 시오무라 아야카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언제 가장 큰 효과를 보일 지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흔히 우리가 예상하지 않았을 때 나타납니다”라고 주일 미 대사 캐롤라인 케네디는 편지에 적고 있다.
2년 전의 그 편지는 자신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시오무라는 회상했다. 정적들로부터,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졌던 차별성 비난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영감을 주었다고 그는 말했다.
몇 달 후 미 대사관저에서 열린 여성지도자들을 위한 리셉션에서 만난 케네디 대사는 주먹을 흔들며 “그런 장애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시오무라를 다시 한 번 격려했다.

지난해 5월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을 찾은 것은 케네디 대사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가 도코나메에 도착한 오바마를 맞고 있다.

2013년 11월 케네디 대사가 일왕에게 신임장을 전하기 위해 왕실이 제공한 마차를 타고 궁으로 가고 있다.
다음 주 귀임하는 케네디는 일본에서 근무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이런 경우를 통해 일본 전국의 여성들에게 ‘여성 권한’의 메시지를 조용히, 단호하게 전달하려 노력해 왔다.
정권이 교체되는 다음 주 임지를 떠나는 수 십 명 미국의 외교관들 중에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대사만큼 이름 난 명사는 드물다. 지난 3년간 케네디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의 하나인 일본과의 밀접한 관계 유지에도 일조했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위주인 일본사회에서 ‘최초의 여성 미국대사’라는 그녀의 지위 역시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성이 대사라는 것, 리더십의 자리에 여성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 인식의 변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케네디는 이번 달 도쿄의 미 대사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케네디 대사 재임의 역사적 의미는 대사관 복도를 지나면서도 느껴진다. 1856년 부임한 첫 주일대사 타운센드 해리스부터 시작해 벽에 쭉 걸린 30명 역대 대사들의 사진은 모두 남성 일색이다.
지휘권을 가진 위치엔 여성이 거의 없고 기혼여성은 자신의 원래 성을 유지할 수 없는 일본에서 유능한 변호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대사직을 수행하는 케네디는 일과 가정의 균형 유지에 성공한 롤 모델이자, 또 정치와 업계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어젠다를 홍보하는 효과적 지지자로 널리 인기를 모아 왔다.
대사로서의 그녀의 영향력은 단순히 여성인 것을 넘어 미국에서 못지않게 일본에서도 사랑받는 케네디 대통령의 딸이라는 배경에도 기인한다.
2013년 늦가을 일본에 부임할 때, ‘명사’ 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교 경력도, 일본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는 그녀가 대사로 임명된데 대해 자질부족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2015년 국무부 감사실이 작성한 보고서도 “일본에 대한 미국 외교의 비중에 걸맞게 기관을 이끌고 관리”하는데 있어 케네디 대사의 미숙함과 대사관 내 소통 부족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은 케네디가 자신의 가문에 대한 선의와 오바마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케네디만 설득할 수 있으면 워싱턴도 설득할 수 있지만 케네디가 반대하면 일본 측이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일본 외무상 후미오 키시다가 말했을 정도다)를 적절히 활용하여 일본 정부와 업계 및 광범위한 분야의 사람들과 유대를 강화해 왔다고 옹호한다.
“그녀는 자신을 명사의 한 사람에서 영향력 있는 공인, 신뢰와 호감을 받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는 정치가로 변화시켜왔다”고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니엘 러셀을 말한다.
케네디는 일본 전체 47개 현 중 35개를 직접 찾아가면서 대중의 인지도를 높였고 2011년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현장인 도호쿠 지역에서의 자전거 경주에 참가했는가 하면 인기 높은 비디오에 산타 모자를 쓰고 춤을 추며 등장하는 장난스런 면모로 친근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케네디가 가장 중시하는 이슈의 하나는 여성의 평등권이었다. 많은 컨퍼런스를 통해 그녀는 데이케어 부족이나 노동법 개혁 같은 현실적 사안에서 일본의 변화 속도가 느린 것을 인정하며 “여러분이 좌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난 개혁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면서 격려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의 여성권리 투쟁의 역사를 즐겨 들려주었다. 특히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솔직하게, 설득력 있게 전해주었다”고 도쿄 골드만삭스의 수석전략가 캐시 마츠이는 말했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의 하나이지만 아베는 전통적으로 워싱턴의 민주당보다는 공화당과 가까운 보수적 자민당의 리더다. 그래서 “케네디 대사의 막후 역할 중 하나는 이념적으로 서로 다른 오바마와 아베, 양국 정상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고 마이클 그린 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고문은 말했다.
지난해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기념관을 찾은 데엔 케네디 대사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으며 지난 12월 진주만 70주년 때 하와이를 방문해 연설한 아베의 연설문 초안을 먼저 읽고 조언을 한 것도 케네디였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에서 물러나는 케네디는 뉴욕에서 연방 상원의원 출마설이 돌고 있으나 아직 확실치는 않다. 한편 트럼프의 주일대사에는 테네시 주의 기업가 윌리엄 해거티가 일부 언론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으나 공식 발표된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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