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형물이나 간판은 그 용도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내기 위하여 그 표시 방법이나 설치 장소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명예로운 훈장이라면 앞가슴에 다는 것이 맞고, 수치스러운 불도장(火印)이라면 이마에 찍어서 죄인임을 표시하는 것이 맞다.
위안부들을 위한 소녀상도 그 설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장소가 선택되어야 한다. 만약에 소녀상이 위안부들을 위로하려는 뜻이라면 우리들의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조용한 장소에 두는 것이 마땅한 것이겠지만, 인권을 짓밟은 만행을 저지른 자들에게 사죄를 촉구하는 뜻이라면, 만행을 저지른 자들의 코앞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
인권을 짓밟은 당사자들은 소녀상을 어디에 두든지 장소에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반성만 하고 사죄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는가?’ 하고 물어볼 것도 아니다. 위안부들과 그 가족들과 그 이웃들의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사죄하고 또 사죄하고 또 사죄만 해야 하는 것이다. 돈 몇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인권을 짓밟힌 당사자 앞에서 범법자는 반성하고 사죄만 하면 되는 것이지, ‘자기들 코앞에서 말하지 말고 자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곤소곤 말하라’니 말이나 될 성 부른가? 나치 독일의 잘못을 그 후예들은 해를 두고 거듭거듭 사죄하듯이, 일본도 그렇게 사죄하여야 한다. 날마다 사죄하고 달마다 해마다 사죄하여야 한다. 설령 피해 당사자들이 ‘이제 그만 되었다.’ 하고 말하여도, 그래도 계속 사죄하여야 한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 위안부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세상 어디에도, 성폭행 당한 딸을 두고 금전 거래로 해결하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 성폭행당한 딸의 정신적 치유를 가해자의 돈으로 치유하려는 부모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들을 돈으로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더구나 가해자들의 돈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부산 일본 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저금통에서 시작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누구도 이 소녀상을 ‘여기에 두어라. 저기에 두어라.’ 말할 수 없다. 한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면, 가해자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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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기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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