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매장 트렌드, 미 매년 260만 사망, 현재의 장례문화 고수하면 토지에 악영향
▶ 자연분해 관 사용, 화장방식 개선 통해 하나뿐인 지구 보호
데니스 화이트(63)은 자신이 인생의 막장에 진입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버섯포자 수의’를 입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구체적인 ‘출구계획’을 미리 마련해 둔 탓인지 저승사자에 쫒기는 듯한 긴박감은 들지 않았다.
흔히 실어증이라 불리는 신경성언어장애증 환자인그는 TED토크를 통해 미국의 한인 비주얼 아티스트 이재림이 디자인한 ‘친환경 수의’를 처음 접했다.
비즈니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연사로 등장하는 TED토크에서 이재림은 시신을 완전분해하고 독소를 말끔히 제거하는 버섯 포자 수의를 소개했다.
버섯 수의는 ‘죽음을 위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화이트는 이재림의 강연을 들은후 자신의 ‘마지막 의상’으로 주저없이 수제품인 버섯포자 수의를 선택했다. 수의 가격은 1,500달러였다.
버섯포자를 넣어 만든 수의는 관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매장’을 전제로 한다. 말하자면 관을 대체하는 수의인 셈이다.
상업용 버섯 수의를 제조하는 Coeio는 관의 안감과 다양한 애완동물 매장상품도 판매한다. 물론 이들 모두 친환경제품이다.
지난해 9월 타계한 화이트는 그의뜻을 이뤘다. Coeio의 파트너십 매니저인 나므라타 콜로는 “화이트처럼 미리 친환경 장례를 사전계획하면 본인과 가족의 부담감을 덜 수 있고 하나뿐인 지구에 나름의 유산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매장에 관한 책을 써낸 수잔 켈리는 “인간과 대지의 관계를 재고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사람들은 사망과 매장의 관계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며 “사실 18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신을 매장할 때 관을 사용하지 않은 채 가족 농장이나교회 묘지에 묻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위생에 관한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고 시신이 부패하는 고약한 냄새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믿음이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개혁론자들은 타운 중앙에 공동묘지 조성을 금지했고 사람들은 시신과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고인의 사후처리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에서는 매년 260만 명이 숨지는데 이들 대부분이 묘지에 매장되거나 화장된다. 하지만 공동묘지는 토지사용에 영향을 주고 화장은 기후변화에 기여한다.
켈리는 2030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시신의 70%가 화장될 것으로 추산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때문에 화장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내세운다.
스코틀랜드 회사인 레소메이션(Resomation)은 알칼리분해를 이용한 새로운 화장방식을 제공한다.
명주 백에 넣은 시신을 물과 수산화칼륨을 섞어 넣은 기계 안에 안치한 후 섭씨 356도로 가열한다.
희석된 수산화칼륨과 고온은 시신을 불과 3-4시간만에 화학성분으로 분해한다. 기존의 화장에 필요한 에너지의 1/8만으로 충분하며 대기 중으로 수은을 방출하지도 않는다.
또 다른 회사인 ‘어번 데스 프로젝트’는 시신의 양분을 오롯이 땅으로 돌려보내는 ‘리컴포지션 코어’(Recomposition Core) 화장법의 상용화에 막바지 손질을 가하고 있다.
디자이너인 카트리나 스페이드는시 경계선 근처의 다층건물에 시신을 집단으로 안치해 시간을 두고 퇴비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농부들이 폐사한 가축을 농장에서 퇴비로 만드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목재칩과 톱밥 등 탄소가 풍부한 자재더미 위에 질소함유량이 높은 시신이나 동물 사체를 올려놓은뒤 습도를 올려주고 추가 질소를 공급한 후 필요한 조정을 가하면 나머지 일은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알아서 한다. 시체더미가 열을 뿜으면서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조직과 뼈를 화학성분으로 말끔히 분해한다. 이열기는 병원균까지 죽인다.
스페이드는 기존의 공동묘지는 지속적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뉴욕시 등 일부 도시는 이미 매장공간이 사라진 상태다. 당연히 매장이나 화장이 아닌 다양한 대체 옵션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산모가 의학적 도움 없이 집에서스스로 출산하는 자가출산이 서서히 번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장례절차를 집에서 처리하는 자가장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자가출산에는 산파가 자주 동원된다. 마찬가지로 자가장례에도 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혀주는 도우미가 곧 잘 등장한다.
스페이드는 “시신처리를 꼭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필요는 없다”며“유족들이 느끼는 감정에 광범위한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후처리와관련한 물리적 작업에 직접 개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19세기 초 많은 도시들이 매장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자 공원묘지가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켈리의 지적대로 처음 조성된 공원묘지는 결혼식과 파티, 피크닉을 위한 장소로 널리 활용됐다.
초기 공원묘지가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공원의 원조인 셈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도 공원묘지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이에 비해 미국의 첫 번째 친환경공동묘지는 람세이 크릭에서 1988년 문을 열었다. 땅을 보호하고 복원시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출발점이다. 친환경 묘지는 독성을 내뿜는 방부액을 사용을 금지할 뿐 아니라 생분해성 관만을 사용하는 ‘자연 매장’을 요구한다.
켈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방해를 주지 않는 죽음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며 “망가진 지구를 치료하기 원한다면 자연계와 우리 자신의 관계에 대한 사고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LA타임스 특약, 김영경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