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반이민 행정명령’ 문화예술계 거센 반발, “입국 금지국가 예술가들 창조물” 이란·이라크 화가 작품으로 교체
▶ 게티 뮤지엄 회장“경솔… 파괴적” 메트 미술관장 등 규탄 잇달아
마티스 대작‘춤’과 ‘피아노 레슨’이 있던 공간을 이란 화가 찰스 호세인 젠더루디의 대작 ‘아버지와 나’가 채우고 있다.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과 비자발급을 금지한 대통령 행정명령이미 전국에서 엄청난 파문과 수많은 반대 시위를 부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들에서도 이를 규탄하는 성명과 행동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주요 뮤지엄들은 지난주 일제히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를 표명하는 목소리를 냈다. 게티 뮤지엄의 제임스 쿠노 회장은 이 행정명령을 “경솔하고, 불필요하며, 파괴적”이라고 말했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토마스 P. 캠벨 관장은 2014년메트 미술관의 최고 히트작이었던 ‘앗시리아에서 이베리아까지’(Assyria to Iberia) 같은 전시는 트럼프 치하였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비난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특히 미국에서 가장 큰 페르시안 커뮤니티가 있는 LA에서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예술가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트럼프 행정명령의 부정적 여파는 미술 평론과 언론 분야에도 미치고 있다. 르몽드 지의 유명한 미술 특파원인 록사나 아지미는 이란 출생자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미국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문화예술계의 거센 항의도 뉴욕 모마(MoMA) 현대미술관의 파격적인 전시 교체에는 비견할 수가 없다. 모마는 트럼프 행정명령이 나오자마자 지난 주 5층에 있는 퍼머넌트 컬렉션 전시장의 일부 작품들을 미국 입국이 금지된 회교국가 출신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로 바꿔 걸었다.
5층의 영구소장품 갤러리는 모마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시장으로, 서양 모더니즘 시대 주요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인상파 이후 세잔으로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후기인상파, 큐비즘, 다다이즘, 미래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온 이곳에 전후 시대의 현대미술이 걸린 적은 이제껏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난 2일 모마 큐레이터들은 이 전시장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프란시스 피카비아, 제임스 앙소르, 움베르토 보치오니, 알베르토 부리의 작품 7점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이란, 이라크, 수단 작가들의 현대미술 7점을 걸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설치된 곳에는 다음과 같이 뮤지엄의 의도를 설명하는 글을 벽에 붙여놓았다.
“이 작품은 2017년 1월27일 나온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으로 입국이 금지된 나라의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환영과 자유의 이상은 미국에게도, 또 이 뮤지엄에게도 필수적인 것임을 단언하기 위해 뮤지엄 소장 작품들을 5층 갤러리에 전시하고 있다”이들 외에도 뮤지엄 영화 프로그램에 시리아 작가의 작품이 추가됐다. 해당 작가들이 살아있고 해외에 있다면 이 영예로운 전시를 결코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기획된 것으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회교국가들은 소말리아, 예멘, 리비아다.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될 이 전시의 교체를 결정한 사람들은 3명의 큐레이터들이다. 판화와 드로잉 부서의 수장인 크리스토프 체릭스, 같은 부의 수석 큐레이터 조디 홉트만, 그리고 회화와 조각 부서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폴리나 포보차, 세 사람은 지난 2일 어떤 작품을 떼고 어떤 작품을 걸 것인지를 결정하느라 무척이나 바쁘고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다.
피카소 갤러리에 걸려있던 ‘카드놀이 하는 사람’(Card Player, 1913-14)은 수단 화가 이브라힘 엘-살라히가 1964년 그린 유화 ‘더 모스크’(The Mosque)로 대체됐다. 살라히는 추상 모더니즘과 아랍 서예 그리고 건축적 모티프가 자유롭게 혼재된 작업을 하는 작가로, 그의 ‘더 모스크’가 보여주는 브라운 색조의 운율과 피카소의 큐비스트 작품들(아프리카 미술에서 영향 받은) 사이에는 공통된 긴장이 존재한다고 큐레이터들은 평가했다.
마티스 갤러리에서는 대작 ‘춤’(Dance)과 ‘피아노 레슨’이 있던 자리에 이란 화가 찰스 호세인 젠더루디의 정교한 대작 ‘아버지와 나’(K+L+32+H+4. Mon Pere et Moi, 1962)가 걸렸다. 동심원들과 상형문자들 사이로 금색 손과 발이 그려진 이 추상화는 인물의 조형을 탐구한 마티스의 작품 세계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알베르토 부리와 안토니 타피에의 작품들이 내려온 전시 공간에는 이란에서 성장한 마르코스 그리고리안의 작품이 걸려있다. 부리와 타피에의 지질학적 작품과 비슷한, 건조해서 갈라진 땅을 캔버스에 표현한 무제의 작품이다.
미래주의 작품 전시실에는 이란의 유명한 조각가 파르비즈 타나볼리의 브론즈 토템(The Prophet)이 등장했다. 이란과 캐나다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타나볼리는 지난 해 이란 당국에 잠시 구금된 적이 있다.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 옆에는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그림(The Peak Project, Hong Kong, China, 1991)이 걸렸다. 자하 하디드는 한국의 동대문디자인 플라자를 건축해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여성 건축가로 지난해 갑자기 타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앙리 루소의 그림 옆에 걸린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
시라나 샤바지는 독일 시민권을 가졌지만 이란 태생이기 때문에 미국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진작가다. 3개의 당구알을 찍은 그녀의 대형 사진작품(Composition-40, 2011)은 다다이즘 갤러리에서 마르셸 뒤샹의 작품(To Be Looked At…) 바로 옆에 걸렸다.
또 표현주의 작가 에른스트 키르히너가 드레스덴 거리 풍경을 그린 작품 옆에서는 이란 태생의 LA 비디오 작가 탈라 마다니의 2007년 비디오 작품(Chit Chat)이 돌아가고 있다.
이 작품들 외에도 이란에서 태어난 미국 작가 시아 알마자니의 대형 조각품이 정원을 내려다보는 로비에 세워져있고, 모마는 이달 중 입국금지 국가 감독들이 만든 4개 영화의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이라크 태생 독일 감독인 카이스 알-주바이디의 ‘알-야젤리’(1974)와 파리에 망명 중인 시리아 감독 우사마 모하마드의 ‘대낮의 별들’(1988) 등이 그것이다.
이란 조각가 파르비즈 타나볼리의 브론즈 토템 ‘예언자’가 미래주의 갤러리에 걸려 있다.
모마가 원래 어떤 특수 상황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기관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트럼프 행정명령에 대한 민첩하고 직설적인 반응은 예술계에서도 굉장히 인상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결정은 큐레이터들의 결집된 목소리에서 나왔다. 그들은 특별히 모더니즘의 진화를 보여주는 5층 전시장을 선택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고, 신속하게 교체가 진행될 수 있었다. 즉 이란, 이라크, 수단의 예술이라고 해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걸린 곳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자는 것이었다. <사진 Sam Hodgsonfor The N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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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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