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방 공연장 방문 교환 연주회
▶ 창단 연주 기록물 등 역사 전시회도

구스타프 말러는 1900년대 초 빈 필과 뉴욕 필을 모두 지휘했던 음악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양대 오케스트라로 명성 높은 비엔나 필하모닉과 뉴욕 필하모닉이 올해 똑같이 창단 175주년을 맞았다. 1842년 봄에 유럽 대륙과 미 대륙에서 각각 설립된 두 오케스트라는 이 특별한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합동 전시회를 열고, 서로의 공연장을 방문해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주말 뉴욕 카네기홀에 온 비엔나 필하모닉은 프란츠 벨저 뫼스트의 지휘로 슈베르트의 ‘마술 하프’ 서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등을 연주했다. 이에 화답하여 뉴욕 필하모닉은 곧 있을 유럽 순회공연 도중 3월29일 비엔나의 콘체르트하우스을 방문,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두 교향악단은 또한 고문서 보관창고를 열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서들을 함께 보여주는 조인트 전시 ‘비엔나와 뉴욕: 두 필하모닉의 175년’(Vienna and New York: 175 Years of Two Philharmonics)을 열고 있다. 지난 2월23일 뉴욕의 오스트리아 컬처럴 포럼에서 시작돼 3월10일까지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오스트리아로 옮겨가 비엔나 필하모닉의 175회 탄생일인 3월28일 하우스 데어 무지크에서 개막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달 맨해튼에서 개막된 이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문서들을 게재하고 거기에 관련된 스토리를 소개했다.
이중에는 오케스트라의 창단 목적에서부터 첫 번째 연주회 프로그램, 또 약 100년전의 순회공연 사진, 나치 시절에 유대인 단원들이 처형된 가슴 아픈 기록, 두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지낸 구스타프 말러가 남긴 편지 등이 있다.
▲창단 문서
“망할 것! 제기랄! 빌어먹을! 정신 차려!” 이것은 지휘자이며 작곡가였던 오토 니콜라이가 1842년 봄 비엔나 필하모닉의 창단 선언문 초고 맨 첫머리에 써넣은 상소리다. 그는 비엔나 필이 “특별하고, 위대하고, 특출한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할 것을 요구했다. 그 옆에는 같은 해 4월 채택된 ‘뉴욕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헌법’이 전시돼있는데 빈 필의 것보다는 훨씬 점잖다.
이 오케스트라의 목적은 “기악 음악의 향상”이며 단원들은 음악 교수들로서 70명으로 제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창단 연주 프로그램
두 오케스트라 모두 첫 콘서트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했다.
비엔나 필하모닉은 1842년 3월28일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을 연주했고, 뉴욕 필하모닉은 그해 12월이 돼서야 창단음악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비엔나 필하모닉(왼쪽)과 뉴욕 필하모닉의 창단 연주회 프로그램.
▲해외 순회공연
1923년 비엔나 필하모닉은 당시 지휘자였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함께 남미 순회공연을 가졌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슈트라우스와 함께 원양여객선 ‘쾰른’호 선상에서 찍은 사진과 1930년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이 아투로 토스카니니와 함께 유럽 투어를 위해 승선했던 ‘디그라세’ 여객선 사진이 나란히 전시돼있다.
▲나치의 만행
비엔나 필하모닉은 나치에 부역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지탄받아온 빈 필은 2013년이 돼서야 “1942년까지 단원 123명 중 절반 가까운 60명이 나치당원이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고 그해 12월 뒤늦은 참회의 표시로 6명의 전 나치 고위관리들에게 수여했던 상을 박탈했다.
나치 치하에서 빈 필은 13명의 유대계 음악가들이 해고됐고, 5명이 강제수용소에서 숨졌는데 이번 전시에 당시 필하모닉 단장이었던 빌헬름 예르거가 1941년에 나치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예르거는 그 자신이 나치 당원이며 친위대원인 극렬분자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 편지에는 5명의 유대인 단원들이 끌려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탄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명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가 처형됐다.
한편 뉴욕 필하모닉에서는 토스카니니 음악감독의 후임으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온다는 소식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푸르트벵글러는 나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는데 이를 문제 삼는 사회 여론이 들끓자 곧 부임 계획을 철회했다.
▲말러의 유산
구스타프 말러는 1900년대 초 빈 필과 뉴욕 필을 모두 지휘했던 음악인으로서 이 전시에는 그의 유물이 많이 나와 있다. 말러가 1897년 당시 위대한 지휘자로 명성 높았던 한스 리히터에게 “당신은 나의 모델”이라고 쓴 편지에서부터 1909년 여객선에서 스위트 객실을 배정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편지 등이 전시돼있다. 또 뉴욕 필의 콜렉션 중에는 ‘브루크너 교향곡 4번 악보의 일부를 말러가 유럽으로 가져갔으나 그가 죽는 바람에 돌려받지 못했다’고 쓰인 기록이 남아있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소장했던 비엔나 필하모닉 인장이 찍힌 말러의 ‘대지의 노래’ 악보도 전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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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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