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하와이로 망명 이국땅서 생 마쳐 박정희-박근혜, 부녀 모두 비운으로 마감
▶ 전두환·노태우, 내란죄·부정축재로 구속 김영삼·김대중, 아들들 비리에 연루 구속
■ 최고의 권력 청와대, 영욕의 역사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에 따른 파면을 당하면서 한때 권력의 최고 정점의 자리에 있었던 역대 대통령들의 수난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하야, 시해, 자살, 가족 및 측근 구속, 검찰 수사, 탄핵 등의 수난과 비운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던 박 전 대통령은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비운의‘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
전직 대통령 수난사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망명길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국가발전의 틀을 짜고 민주주의의 싹을 뿌린 공적을 남겼으나 장기집권으로 불행을 자초했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뒤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폭력적 장기집권을 시도하다 역풍을 맞았다. 이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이어지고 결국 이 전 대통령은 4·19 혁명 속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미국 하와이로 망명,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윤보선 대통령
윤보선 전 대통령도 5.16 군사정변 이듬해에 스스로 물러난 뒤,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징역형까지 선고받는 등 수난을 겪었다. 윤 전 대통령은 4.19혁명을 맞아 새롭게 시작된 내각책임제 하에서 1960년 8월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가 1961년 5월16일 육군소장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는 그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윤 전 대통령은 하야 다음날인 20일 결정을 번복하고 혁명 내각을 구성했지만 결국 1962년 3월22일 1년5개월의 임기를 끝으로 사임했다.
■박정희 대통령
5·16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도 집권 초기 산업화를 통해 한국 경제사이 큰 획을 그었으나 인권과 언론 탄압을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특히 3선 개헌과 유신체제의 가동으로 집약되는 장기 독재의 끝은 비참했다. 1979년 YH여공 사건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데 반발하면서 부마항쟁이 터지자 정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부마항쟁 해법을 놓고 강·온파간의 대립이 격화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결국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저격을 받고 운명을 달리했다.
■전두환 대통령
12·12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은 철권통치가 트레이드 마크다. 정권 유지를 위해 인권탄압과 언론 통폐합 같은 수단을 통해 7년 임기 내 강력한 리더십를 표방했으나 말로는 비참했다. 임기말 대통령 직선제 약속을 뒤집으려 하자 전국민적인 저항(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받은 뒤 임기를 마쳤다. 이후 오랜 친구이자 쿠테타 공범인 노태우 정권에서 백담사로 귀양을 갔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내란죄와 반란죄의 수괴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결국 수감됐다가 2년만에 사면으로 풀려났다. 또,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기업들로부터 2,259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퇴임 이후 추칭금 폭탄을 맞았다
■노태우 대통령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를 수용한 뒤 첫 직선대통령이 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전두환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운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노 전 대통령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재임기간 권력형 부정축재 사건과 내란 등으로 임기 후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대기업을 상대로 한 비자금 조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고, 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오명을 남겼다.
■김영삼 대통령
문민시대를 연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자신의 아들이 구속되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같은 개혁을 이끌며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공조직보다 사조직에 의존하면서 임기 후반 지지기반이 급속히 붕괴했다. 특히 차남 현철씨는 재임 시절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데 이어, 퇴임 후 2004년에도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시끄러웠다. 1999년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옷로비 사건을 시작으로 세 아들 모두 비리에 연루됐다 임기 말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기업체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 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두 아들이 한 달 새 잇따라 구속되자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대북송금 등으로 구설수에 수차례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를 이끈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깨끗한 정권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치개혁과 높은 도덕성을 표방하며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도덕성을 최대의 무기로 내세웠으나 퇴임 이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 불명예를 기록했고, 아내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60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직후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부터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의 중심에 섰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시 이로 인해 특검 조사를 받았고, 이후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해 ‘정치적 멘토’로 통하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친인척과 최측근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또 내곡동 대통령 사저 터 특혜 계약 의혹으로 부인 김윤옥 여사와 아들 시형 씨가 특검 수사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자 ‘선거여왕’이라는 이미지를 토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정권 재창출 성공하는 동시에 첫 부녀·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40년 지기’인 최순실씨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발목이 잡히면서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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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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